요즘 스시 오마카세가 대세라면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회전 초밥집이 대세였다. 학교 근처에도 유명한 회전초밥집이 있었는데, 동네에서 꽤 고급 식당의 포지션을 차지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지금은 회전 초밥은 운영을 중단했지만 지금도 영업 중이다.
중산층 가구가 대부분인 학교 친구들이 가족 외식으로 즐겨 찾았던 가게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횟집이나 고깃집 메뉴판에 정가 대신 ‘시가’라는 단어를 보면 괜히 떨리는 나의 지독한 가난은 고등학교 시절에 절정을 찍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외식으로 갈 수 있는 식당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무심하게 어제 가족들과 그 식당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대화에 낄 수 없음에 당혹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함이 밀려왔다. 그 식당에 한 번 가보는 것이 그 시절 나의 수 없이 많은, 소소한 소망 중 하나였다.
졸업 후 대학생이 된 내가 홍대, 신촌, 강남에서 매일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맛집들을 탐닉하는 동안 그 식당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역류하듯 올라오긴 했으나 딱히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 초밥집을 아주 우연한 계기로 방문해 볼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친구도 아닌데 그 친구와 왜 동네에서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몇 해전 추석 연휴에 동네에 놀러 온 친구와 근처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리 눈에 띈 것이 그 초밥집이었다(참고로 <보말칼국수와 밥심> 편에서 함께 한라산을 올랐던 친구다). 마침 친구도 전부터 그 가게에 가보고 싶었다고 하여 별 고민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많지는 않지만 둘 다 소득이 있는 직장인이었기에 밥 값으로 몇만 원은 기꺼이 쓸 수 있는 처지가 되었을 때였다.
마음먹고 갔지만 그래도 접시 색이나 쌓여가는 그릇 숫자에 아예 태연할 수는 없어 은근슬쩍 가격을 어림잡아 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계속 손님의 한 발짝 뒤에 서서 대기하는 직원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메뉴판을 보고 맛보고 싶은 고급 어종에 속하는 초밥을 따로 주문하는 사치까지 부렸다.
적당히 배부르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받은 영수증에 찍힌 금액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식사 자체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드디어 맛보았다는 기쁨과 후련함과 더불어 약간의 허무함을 느끼며 제법 차가워진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영수증의 총금액을 반으로 나누어 계좌 이체하고 친구와 헤어졌다.
10년 넘게 막연하게 동경하던 장소를 그 시절 내 친구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녀왔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허탈했다. 이 별것 아닌 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았다니. 친구들은 10년도 더 전에 다녔던, 그냥 동네 초밥집인데 나는 그 간극을 따라잡는데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니 씁쓸하기도 했다.
가지고 보면 해보고 나면 참 아무렇지 않은 것인데 결핍되었을 때는 그것이 왜 그렇게 그게 느껴지는지. 못난 심보 때문인지 남의 떡이 유독 더 커 보이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망과 좌절을 깊은 곳에 품고 사는 것 같다. 비교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지 늘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