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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요가원 마지막 날

마라톤 키트 픽업을 위한 여행

by 에스더

2024.11.30. (토)


어제 아빠랑 이야기하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아침에 언니들이랑 전화하기로 한 시간이 되자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너무 피곤해서 언니들에게 좀 늦게 보자고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냥 접속했는데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도 안되어서 바로 행복해졌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2주에 한 번씩 얼굴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도 더 자주 얼굴을 보게 된 것 같은데 자주 보니까 더 할 말이 많아진다. 그렇게 두어 시간 이야기를 하다 요가 시간이 되어서 먼저 미팅을 종료하고 나왔다.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11월의 운동이었던 요가원에 가는 것도 마지막 날이라는 뜻이다! 사실 어제 마지막 수업이었는데 오늘 의자를 활용한 요가 특강이 있어서 하루 더 올 수 있게 되었다. 요가 수업은 내가 스페인어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선생님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의 마음가짐이 다른데, 오늘 선생님은 내가 스페인어를 알아듣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 더욱 눈치코치 열심히 따라갔다. 두 시간에 가까운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사바사나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사바사나 타임에 온전한 평화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해서 뿌듯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어제 잠을 덜 잤더니 잠깐 잠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니 오늘은 요가매트도 챙겨 나왔다. 한 달간 너무 고생한 요가매트! 요가 등록하기 일주일 전에 우연히 회사에서 요가 수업을 해주고 매트도 가져가도 됩니다~해서 이게 무슨 운명적 만남인가 챙겨 왔지만 막상 요가원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듣다 보니 너무 얇아서 무릎이 아파 가끔 미워했던 우리 요가매트.. 정이 든 만큼 너덜너덜해졌다. 처음 요가원에 왔을 땐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평온한 마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잡음이 없어졌음에 감사했고 중간엔 이게 운동이 되나 불신하다가 마지막까지도 인스타에서 보이는 요가를 사랑하는 분들만큼의 요가에 대한 매력을 찾지는 못했지만 매일 요가 수업을 듣는 내내 행복했다. 정든 요가 매트를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돌아와 고구마를 삶아 먹고 마라톤 키트를 픽업하러 도시 반대편까지의 여정을 떠났다.


집에서 나와 먼저 얼마전 주짓수를 포기하고 대체 운동으로 라틴댄스를 알아봐서 직접 방문해 짧게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버스를 타고 산호세 중심부로 나왔다. 이제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거나 우버를 탈 예정이었는데, 버스는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환승은 항상 난이도가 있다. 그런데 우연히 딱 버스가 정류장에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이만 원짜리 지폐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근처 마트에 가서 바꿔달라고 하려다 작은 과자 하나를 사고, 더 작은 돈은 없니? 한 소리 듣고 동전을 만들어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는 산호세 중심부를 빠져나가는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고 우버를 부를걸 후회했다.


한국에선 버스에 음식물을 들고 탈 수도 없고 먹을 수는 당연히 없는데 옆 아주머니가 뭘 드시길래 나도 아까 사 온 과자가 생각나서 괜히 눈치 보며 몰래 입에 하나 넣어봤는데, 예상치 못한 맛이었다. 잘 모르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것이 아가용 과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했는데, 막상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1분 이내로 픽업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옆에 요즘 계속 찾던 러닝벨트를 파는 부스가 하나 있길래 관심을 가졌다가 한참 설명을 들었는데 러닝벨트 5만원이요? 5만원 지갑에 넣고 핸드폰은 손에 들고뛸게요. 그렇게 나와서 반대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찾아보니 반대편이 아니라 아까 그 자리에서 같은 버스를 타는 순환루트였다. 고개를 든 순간 반대편에서 버스가 떠나는 모습을 보았고 그렇게 30분간 더 기다려야만 했다.


30분 뒤 도착한 버스를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센트럴로 다시 돌아왔다. 이미 바닥난 체력. 아니 마라톤 키트는 기본적으로 택배로 집에 보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제 블랙 프라이데이였다고 여기저기 가게에서 세일을 많이 하고 있었다. 혹시 핸드폰을 넣을 수 있는 러닝 바지나 상의를 찾을 수 있을까 열심히 구경하다가 아주 지쳐버렸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치즈 케이크와 비슷하게 생긴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할 때 빵 이름 말씀하시는데 queso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신 것이 좀 불안했는데 역시나 받아서 먹어보니 tamal asado라고 하는 옥수수 빵인데 짭짤하고.. 맛이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맛의 빵이었다. 그래도 커피를 먹으니 좀 살 것 같아서 힘을 내서 버스를 타고 집 앞 마트에서 내렸다. 카페인 포션으로 채운 힘으로 장까지 보고 집으로 와서 내일 마라톤 짐 싸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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