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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Feb 19. 2021

나에게 딱 맞는 집

신혼백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마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산책할 맛이 나는 9월이었다.

2명 누우면 꽉 차 버리는 5평 단칸 자취방 만기를 6개월이나 남겨놓고, 우리는 같이 살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다. 부동산에 연락해서 예약을 잡고 퇴근하고는 후다닥 달려와 함께 꾸며나갈 신혼집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보러 가는 날이었다. 역과의 거리, 평수, 금액 하나하나 따지면서 거르고 거르다 보니, 적당한 매물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보여주는 집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우리는 마음에 든 척을 하고 그렇지만 서도 조금 더 좋은 집을 보기 위해 아쉽지만 다음 집을 보러 간다는 뉘앙스와 함께 몇 개 남지 않은 신혼집 후보들을 줄여 나갔다.

워낙 추진력은 빠른 우리 하루 만에 끝내버리겠다는 의지와, 또다시 회사에 반차를 내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우리에게 딱 맞는 집을 찾아다녔다. 후보가 줄어들수록 점점 더 관대하게 집을 바라보게 되었고, 마지막 집을 볼 때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오늘 꼭 끝내고 싶었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제일 나았던 집으로 결정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오늘 본 집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말하지도 못하고 결국 집에 돌아가려다 바로 앞에 있는 부동산을 보고는 "딱 한 곳만 더 가볼까?"라는 말과 함께 부동산에 들어갔다.


안에는 아주머니 서너 분이 전세 매물이 없다는 얘기와 함께 절망적인 이야기를 주셨고, 그렇기 때문에 몇 없는 매물 중에서라도 빨리 골라야 한다는 은근한 영업을 하셨다. 그리고는 우리가 항상 듣게 되는 결혼은 일찍 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듣던 그때, 딱 하나 남은 집이 있다는 중개인 아주머니의 말과 함께 우리느 곧장 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집을 볼 수 있었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이곳이다!"라는 생각을 둘 다 했던 것 같다. 표정은 이미 설렘 그 자체였고, 몇 가지 질문과 중개인 아주머니가 먼저 말해줘야 할 집의 칭찬은 우리가 먼저 다 했었다. "역도 엄청 가까워!", "풍경도 너무 이쁜데?", "여기 옷방으로 쓰면 되겠다!" 등의 말과 함께 이미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집을 우리는 그 날 바로 계약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마침내 찾은 마음에 드는 집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로 아기자기하게 꾸미며, 살고 있다. 가끔 아내는 "우리 집이 너무 좋아."라는 이쁜 말을 한다. 무심코 들어가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부동산에서 우리의 집을 찾아낸 것이 가끔은 놀랍기도 했었다. 낮에 그렇게 돌아다닐 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집이 딱 그 부동산에서 보여주셨으니 말이다.


마침 집에 가기 전 우리가 가고 있던 길 앞에 그 부동산이 있어서, 

늦은 시간에도 아직 중개인 아주머니는 퇴근을 안 하시고, 친구 분들과 수다를 떨고 계셔서,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눈치 안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을 볼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우연이 합쳐져서 우리는 지금의 집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딱 맞는 신혼집을 구했듯이, 아내를 만날 때도 여러 가지 우연히 맞춰져서 만날 수 있었다.

마침 같은 대학교 MT조여서, 가까운 지역에서 일하고 살고 있어서, 또 다른 수업에서 만나게 되어서

여러 가지 우연이 합쳐져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딱 맞는 지금의 아내가 내가 있던 곳에, 그리고 아내가 있던 곳에 내가 있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게 다행이고, 신기하다.

나는 내가 항상 럭키가이라고 말한다. 운이 좋은 편인 것 같고, 이런 우연이 나에게 잘 통하는 것 같아서


나에게 딱 맞는 집이 많은 노력에도 찾지 못하다 우연히 들어간 부동산에서 찾게 된 것처럼,

각자 살아가다가 우연히 겹치는 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처럼,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찾아지지 않던 것과 정말 우연한 곳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남들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아서, 그 원망의 화살이 주위 사람에게 향하기도 한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두어 앞으로 우연히 만나게 될 '딱 맞는 신혼집', '딱 맞는 아내'처럼 자신에게  '딱 맞는' 무언가가 찾아올 거라는 마음을 가져보자. 

무언가 찾아올 거라는 마음이 희망찬 하루를 희망한 하루로 만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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