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닙니다.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지극히 논리적이고 정상적입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손에 묻은 정자에 의해서도 임신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요. 정자는 공기 노출로 바로 죽지는 않아요.”
와, 이 새끼가 중학교 1학년 아이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나는 소리를 칠 뻔했다.
“아, 정말이요?”
중1 여자아이는 얼굴을 들었다. 살구색으로 달아오른 볼 위에 있는 놀란 눈 사이에는 미간이 일자로 구겨져 있었다. 사장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은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근거 없는 불안과 과도한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럼요. 임신은 여자의 인생에 아주 큰 사건입니다. 작은 디테일까지도 걱정하는 게 당연해요.”
“정말이요?”
“물론이지요. 다른 생명이 생긴다는 건 정말 큰일이에요. 그리고 다른 생명을 평생 보살펴야 한다는 것도 엄청난 책임감이고요. 걱정하시는 게 당연해요. 그리고 상대가 친오빠라면 진짜 더 큰일이고요.”
사장은 진지했다.
나는 이 어이없는 답변을 막으려고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사장은 그 살집이 뛰룩뛰룩 붙은 엉덩이를 양옆으로 흔들어 다시 나를 쫓아냈다. 나는 구석에서 커피 타는 척을 하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사장은 마치 산부인과 의사라도 되는 양 말을 이어 나갔다.
“임신을 피하려는 사람에게 정자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절대로 임신만은 피해야 하죠?”
“네. 물론이에요. 저 엄마한테 맞아 죽어요.”
“일단 정자는 공기 중이나 옷, 침대, 피부 등에 묻으면 정액이 마를 때까지만 살 수 있고 마르면 바로 죽게 됩니다.”
“아, 그래요?”
“네. 하지만 공기 중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물이 있는 곳은 위험해요. 액체를 뿌린 곳이 어디라고 했죠? 항상 살균을 하는 곳인가요?”
“네? 아니요.”
“항상 살균을 하는 수영장 같은 곳에서는 정액이 물을 타고 이동하더라도 수 초 안에 바로 죽습니다. 이게 넓은 수영장에서 변태 같은 놈들이 오줌을 싸든 사정을 하든 절대로 임신이 안 되는 이유지요.”
“아. 진짜 수영장에서 임신 됐다는 사람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여자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집에 있는 미지근한 욕탕 물이나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는 좀 더 살 수 있습니다.”
이게 사장의 특기였다. 사장은 일단 듣는 사람이 바로 이해되는 안 좋은 사례를 제공해서 고객이 더 걱정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요?”
“욕실 주변이 위험하죠. 미지근한 욕탕 물이나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는 정자들이 좀 더 오래 살 수 있지요.”
사장은 여자아이의 불안을 더욱더 고조시켰다.
“아, 정말요? 그럼 어떻게 하죠?”
이제 여자아이는 사장의 전문지식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때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전문지식이 사장의 입에서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럼 정자가 실제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갔다고 하면 또 얼마나 살까요? 정자의 수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자궁의 점막에서 분비되는 점액의 질입니다. 이 점액이 정자에 최적의 영양분과 환경을 제공한다면 최대 5일까지 살 수 있지만 보통은 2, 3일 정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네? 5일이나요?” 이 여자아이는 정액이 질에 닿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벌써 잊어버리고 2나 3, 5라는 객관적 숫자에 빠져들었다.
“네. 점액의 질이 좋을수록 임신의 확률은 높아지게 됩니다. 혹시 고객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사장은 마치 애를 한둘은 낳아 본 30, 40대 여성을 대하는 말투로 물었다.
“저요? 저 열네 살인데요.”
여자아이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서 조금의 불안과 약간의 자부심을 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건강에 문제는 없으시죠?”
“네. 별다른 문제는 없는데.”
“그럼 점액의 질은 최상일 겁니다.”
“네? 정액에다가 질까지 최상이라고요?”
그 여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