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런 황당한 성 관련 걱정을 가지고 오는 건 여자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여자아이들의 엄마들도 있었다. 이 아줌마는 등장부터 요란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몸부터 진입을 시도했다. 문손잡이를 돌리기도 전에 발을 먼저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해 한 번 쾅 소리가 났고, 문손잡이를 돌리면서 벌써 머리를 들이미는 바람에 두 번째로 또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만약에 천천히 돌아가는 자동문이었다면 한쪽 문을 깨고 들어올 스피드였다. 우리가 고객의 외모나 병력 등을 파악할 여유도 주지 않고 용건부터 이야기했다.
“올해 1월 말쯤 여덟 살 난 딸아이 정수리 냄새가 너무 심해서 소아과에 갔는데요. 인바디, 손 엑스레이, 피검사도 했는데요. 성조숙증일까 봐 너무 걱정이에요.”
사장도 대단한 게 원래는 뚱보로 밥 먹을 때 빼고는 매사에 꾸물거리는데, 이 아줌마의 질문을 듣자마자 아줌마의 스피드에 맞춰 재빨리 재질문을 했다.
“의사는 뭐라던가요?”
“뼈 나이는 일곱 살 반 정도라 조금 앞서긴 하지만 괜찮데요. 호르몬 수치도 정상이고요. 정수리 냄새는 그냥 샴푸를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성의 없지 않아요?”
이 말을 듣자마자 사장은 고개를 마치 닭이 모이를 쪼듯이 수십 번이나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어머니. 의사들이 다 그래요. 저도 같은 입장으로서 저는 어머님이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십분 이해됩니다.”
엥? 같은 입장이라니. 사장이 나 몰래 딸을 키웠나? 사장은 가까이 다가와 앉아 있던 내 정수리 주위에서 코를 킁킁거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아씨, 저리 치워요!라고 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아줌마는 공감을 받았다는 기분에 어느새 손뼉까지 치고 있었다. 나는 둘의 대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비즈니스였지만 생각해 보니 순간 사장의 딸 취급을 받았다는 데 기분이 급격히 더러워졌다. 그리고 이 나이에 성조숙증이라니. 맡아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정수리 냄새도 안 나고 더더군다나 이미 조숙해도 될 나이었다.
“그리고 가슴이나 유두 발달을 잘 지켜보라고 하죠?”
사장은 차트 하나를 들고 와 볼펜을 까딱까딱거리며 마치 의사가 환자 상태를 분석하는 것처럼 말했다. 마침 그날 사장은 튀어나온 배를 가리기 위해서인지 엄청나게 크고 긴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어 의사 가운을 걸친 것같이 보였다. 그 성질 급한 아줌마는 1초도 사용하지 않고 아래위로 사장의 외모를 살폈다. 단순한 복장이나 행위에도 그새 의사의 권위를 느끼는 듯했다. 인간은 시각적인 효과에 약하다. 사람은 진짜 단순하다.
“맞아요. 의사 선생님이 가슴을 보라기에 제가 매일매일 딸아이 가슴을 체크하거든요. 제가 너무 걱정을 해서일 수도 있는데 요즘 딸애가 살이 쪘는지 가슴이 튀어 나와 보이더라고요.”
아줌마가 이 말을 마치자 그 둘은 동시에 내 가슴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눌러 보셨나요?”
“아. 의사 선생님도 그런 말씀 하셨는데. 네. 병원에서 말 듣고 와서 한번 눌러 봤어요.”
아씨, 나는 순간적으로 팔짱을 끼면서 가슴을 가렸다.
“아프다고 하던가요, 따님이?”
“아뇨. 아프지는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뭐가 부끄러운지 비명 지르고 난리던데요.”
“그럼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나는 이 사람들의 대화가 놀라웠다. 엄마가 기습적으로 딸의 가슴을 눌렀고, 딸은 비명까지 질렀다는데.
“근데 피검사를 또 하자고 하니 딸도 싫어하고 딸아이 아빠도 뭐 그렇게 자주 피검사를 하냐고 화를 내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하는 게 뭐가 자주인지. 딸아이 아빠는 딸 키우는데 너무 무심하고 무지한 거 같아요. 병원비도 그렇게 아까운가 봐요.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병원비 얼마 나왔는지나 묻고.”
“그러면 안 되죠. 소중한 딸아이인데.”
“그렇죠? 아빠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관심하니까 제가 혼자 이렇게 걱정하는 거라고요. 또 의사라는 인간이 처방이라고 내린 게 뭔지 아세요? 샴푸를 바꾸래요, 글쎄 샴푸를. 그래도 전문의라는 놈이.”
“어머니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가 낳은 딸아이 건강검사를 하는데 하지 말라는 소리나 하고. 의사라는 사람이 샴푸 바꾸라는 소리나 하고 있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사장은 ‘자기가 낳은 딸’이라는 말을 너무 세게 얘기했는데 무슨 사정에서인지 보통 때와는 다르게 감정에 너무 치우쳐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인지 그 아줌마의 박수 리액션을 따라 하고 있었다. 둘은 한쪽에서 말하면 다른 쪽에서 손뼉을 치고 다른 쪽에서 말하면 또 이쪽에서 손뼉을 치며 아주 맞장구라는 말에 걸맞게 놀고 있었다. 그리고 짝짜꿍이 너무 빨라서 나는 무슨 중국 챔피언 둘이서 치는 탁구 경기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말이 안 되죠, 사장님. 드디어 제가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을 만난 거 같아요.”
“고객님과 유사한 사례를 가진 다른 고객님들이 이미 많이 계십니다.”
뭐라고? 여덟 살짜리 딸 정수리 냄새 좀 난다고 성조숙증 의심하는 아줌마가 이미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