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성규 Aug 23. 2024

걱정보험 주식회사

#13

  이렇게 일사천리로 계약을 따내는 사장이지만 한 번, 꼭 한 번 고객을 그냥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고객을 그냥 보내면 어쩌냐는 내 말에 사장이 대답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장은 야, 아무리 그래도 딸 같은 애가 죽을 걱정을 하는데 어떻게 돈을 받아,라고 말하며 창밖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설마 우세요?라고 말할 뻔했는데 워낙에 심각해 보여서 한 30분이나 혼자 두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놓친 고객인 여자애는 이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눈이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나빠지는 것 같으면 실명이 될까 걱정이 돼요. 혹시나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증세를 보이면 심장마비나 다른 사유로 사망할까 또 걱정이 돼요.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랑 고민 때문에 요즘 잠자리도 뒤숭숭하고 항상 사망 전 증세에 대해서 검색을 해요. 실명 전 증상 등등 걱정되는 것에 대한 건 모두 찾아봐요. 근데 요즘은 임신 관련해서 걱정을 많이 해요. 항상 생리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미성년자지만 임신일까 걱정이 돼요. 사실 한참 어린 나인데 이런 생각이 만날 드는 게 맞는 건가요?”

 “고객님은 너무 걱정이 많으시군요. 그래도 너무 몸에 관심이 없는 것보단 본인 몸 걱정 잘하는 게 좋죠. 죽음은 나이가 어리다고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지만 죽는 건 순서가 없어요. 걱정이 심해지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걱정한다고 안 좋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벌어질 일은 어쨌든 벌어집니다. 일이 발생하면 그때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노력을 하죠?” 

  “지금은 걱정이라는 방법으로 노력을 하시죠?”

  “네. 그런 거 같아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시고 있죠?” 

  “그렇죠. 누워서 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원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다가 목숨이 다해 가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죽지만 않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요. 고객님은 아직 미성년자이니 부모님이 같이 계십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와 같이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님 편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지금까지와 같이 올곧이 부모님과 함께 풀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뭐라고? 올곧이? 고객님 앞에 벌어질 일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와 같이가 아니라? 엥 사장이? 그 꼬맹이 고객은 나처럼 엄마와 단둘이 살아왔다고 했다. 올곧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올곧이란 단어는 올고지라고 읽고, 마음이나 정신 상태 따위를 바르고 곧게 한다는 의미였다. 그날 밤 꿈속에 걱정, 생리, 임신, 싱글 맘, 여자 꼬맹이, 바른 정신 상태 이런 단어들이 사장이 말하지 않는 과거와 함께 여기저기서 날아다녔다.      

이전 12화 걱정보험 주식회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