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고객으로 오는 사람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이 많다. 하지만 직장 관련 고민을 가지고 오는 성인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걱정거리를 듣다 보면 인터넷에서 읽은 말이 생각난다. 학교 다닐 때는 취직만 하면 행복해질 거 같았는데 아니었다. 직장은 만병의 근원, 퇴사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이다. 직장인 고민 상담을 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공통점도 하나 발견했다. 일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때문에 걱정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직장인들은 우리에게 좋은 고객이었다. 고정 수입이 있어 보험료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인간관계 관련 문제가 그치질 않고 퇴사하기 전까지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퇴직할 때까지 매일매일 보험료를 바쳤다.
이 고객은 진짜 스텔스 전투기처럼 찾아왔다. 문 여는 소리도 안 들렸다. 사무실에 누가 들어온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톱 정리를 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서 손톱 안의 살집을 깎을 뻔했다. 씨발,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발표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제 숨소리가 신경 쓰이는 거예요. 남들이 제 숨소리를 듣고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제 사수한테 그걸 말했는데 그때부터 사수도 신경 쓰여서 너무 걱정이 돼요. 제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사수가 신경 쓸까 봐 또 그게 신경 쓰이는 거예요. 내일 또 발표인데 멘탈 챙기게 좀 도와주세요. 발표 망할까 봐 너무 걱정이 돼요.”
“고객님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거 아니에요? 여기는 멘탈 케어 회사가 아니라, 걱정보험 주식회사인데요.”
이 고객은 내 띠꺼운 대답에 불안 증세를 보였다. 또 나와 내가 깎고 있던 손톱 그리고 내가 실수로 내뱉은 씨발이란 말에 엄청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장이 상담을 시작했다.
“발표 준비로 집중을 하면 고객님의 숨소리가 신경 쓰이고, 이 고민을 사수에게 털어놓은 사실 또한 고민이 되시죠. 고객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고객님은 참 배려심 많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 같아요. 발표를 준비하며 많은 긴장감을 느끼시고, 그로 인해 걱정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사장은 이번에도 칭찬과 인정을 적절히 사용하며 고객을 안심시켰다.
“네, 제가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손님은 사장의 치켜올려 주는 말에 감정이 들어 올려졌다. 사람을 들었으니 다음에는 내려놓는 스킬이 나올 차례였다.
“내일이 또 발표 날이라 많이 걱정되시고 불안하실 것 같습니다. 고객님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불안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고, 그런 분들이 저희 상담센터에 방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그런 고객분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어요.”
발표 때문에 우리 회사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그날 아침부터 우리 회사에 찾아온 사람들이라고는 오빠가 정액을 묻혀서 임신한 거 같다는 중학생 여자애랑 여덟 살짜리 딸이 정수리에 냄새가 난다고 성조숙증 걱정을 하던 아줌마였다.
사장은 말을 이어 갔다.
“혹시 예전에 발표를 하셨을 때 나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 네. 학교 다닐 때 한번 제가 발표를 했는데요. 그 전날에 학과 모임에서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마이크에 대놓고 트림도 하고 구역질도 할 뻔해서.”
“혹시 뀌기도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