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대형폐기물 신고필증
앉아 씨는 거의 악을 쓰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내게서 떨어져요. 빨리 일어나요! 자세히, 솔직히 얘기 좀 해봐요!”
나는 녹화를 마치고, 아이폰의 비밀번호를 해제했다. 누구든 휴대폰을 열고 나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는 넥타이를 잡아당겨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나는 앉아 씨를 마주하고 앉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별 일 아니야. 미리 준비하는 것 뿐.”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기다려요. 조금 숨 좀 돌리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야기 하는 게 좋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또 사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아프고,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전부이지 않은가. 그래서 앉아 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앉아 씨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수술하면 나을 수 있잖아요? 왜 수술을 안 받죠?”
“수술을 받을 거야. 그런데 그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하는 거라니까요.”
“지금 하는 걸 보면 죽음을 준비하는 거지 삶을 준비하는 게 아니잖아요?”
“삶을 준비하는 게 어떤 것이기에 그래요?”
앉아 씨는 말문이 막힌 듯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답했다.
“아내에게 연락하고, 주변의 도움도 받고...... 뭐 그런 것부터 당장 해야 하는 거겠죠.”
“아내는 지금 프랑스에 있어요. 형제들하고는 인연을 끊고 산지 20년이 다 돼가요. 지금 당장 곁에 있을 수 없다면, 나의 삶에 상관할 수 없어요. 그들은 그들의 시간 속에 있고, 나는 나의 시간 속에 있을 뿐인 거예요. 원망할 것도,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죽음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죠?”
이번에는 내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내가 살면 앉아 씨가 죽고, 앉아 씨가 살면 내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는 없었다.
“한 번 어긋난 것은 되돌릴 수가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해요.”
“그런 말은 어려워요.”
“앉아 씨는 현실 님이 보고 싶다고 했죠?”
“네? 아, 그래요.”
“한 번 생각해봐요. 내가 현실 님에게 앉아 씨를 데려다 줄 수 있어서 그렇게 한다면, 현실 님과 앉아 씨가 다시 예전처럼 지내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앉아 씨는 머뭇거렸다.
“그래요. 현실 님과 다시 지내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하지만 앉아 씨는 현실 님에 대해 원망이나 미련이 남아 있는 건 또 사실이잖아요?”
“그래요. 꼭 한 번은 보고서 복수했다고 자랑하고 싶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여자로 남아 있는 건가요?”
“네? 그건 무슨 말이죠?”
“앉아 씨가 말했잖아요. 사물들의 정령은 키퍼를 따라 변한다고. 지금 내가 보는 모습은 옛 키퍼를 닮은 모습이라고. 지금쯤이면, 나를 새로운 키퍼로 받아들였다면, 나를 닮아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건.....”
앉아 씨는 무언가 말을 계속하려다, 멈칫했다.
“앉아 씨에겐 ‘아직’인거죠?”
앉아 씨는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상관없어요. 괜찮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앉아 씨와 현실 님, 그리고 앉아 씨와 나는 이미 어긋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만 한다는 뜻이에요.”
앉아 씨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변하기의 작품을 보고서 그에게 말했던 것 생각나요?”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오브제들을 재활용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오는 쾌감, 그게 당신의 예술이냐고 했던 말. 예전 같았으면 쉽게 동의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어긋난 것을 누군가의 생각과 계획대로 다시 구부릴 수는 없어요. 그건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 폭력일 수도 있어요.”
“망가진 것은 수리하고, 아픈 몸은 치료할 수 있잖아요? 헝클어진 관계도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의자인 앉아 씨를 수리해서 다시 정상적으로 쓸 수 있고, 내 머리가 아픈 것은 수술해서 아프지 않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앉아 씨를 의자로 썼던 사람들과의 관계,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였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까지 그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당신은 상처 받았다는 핑계로 모든 것을 다 포기하려는 건가요?”
“포기? 그 표현보다는 ‘수락’은 어때요? 나는 상처받았음을 수락한다! 나는 스스로에게의 유배를 수락한다!”
나는 마치 연극의 대사를 내뱉듯 한껏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며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앉아 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욕망하는 게 버거워요. 내 자신이 한없이 무거워요.”
나는 탑이 무너지듯 급격하게 의자 위로 쓰러져 내렸다.
“심장은 텅 비어있고, 머리에는 너무 많은 게 들어있어요.”
“오하루는 따뜻한 사람이에요.”
앉아 씨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나는 무릎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앉아 씨를 바라보았다.
“한 번, 안아볼 수, 있을까요?”
앉아 씨가 미소 지으며 팔을 벌렸다. 나는 일어섰고, 앉아 씨와의 거리는 겨우 두 걸음이었다. 하지만 막 발을 떼는 순간, 나는 죽음이 찾아왔음을 느껴야만 했다. 머릿속에서 풍선이 터진 것 같았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외마디 비명조차 낼 수 없었다. 숨이 멈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대로 주저앉듯 쓰러졌다. 앉아 씨가 나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러나 힘에 부쳤다. 앉아 씨도 나와 함께 주저앉았다. 안간힘을 쓴 끝에 겨우 내 머리와 등을 의자, 그러니까 앉아 씨 자신의 몸에 기대게끔 할 수 있었다.
“아, 안돼요! 일어나요! 정신 차려요! 이대로는 안 돼요!”
앉아 씨는 소리쳤다. 나는 앉아 씨의 무릎에 기댄 채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당신이어서,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지하실에는 앉아 씨의 그 들리지 않는 흐느낌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한참 후에야 아내에 의해 발견됐다. 그 사이에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에는 변하기도 있었다. 변하기는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와 만났던 그날의 한 장면. 십자가와 의자가 있는 모습. 화면 정중앙에 빨간 의자가 놓여있고, 그 뒤로 십자가가 있는 바로 그 풍경이었다. 땅 밑에서 위를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려져 있어, 마치 의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순교하는 사물들? 혹은 사물들에 대한 경배? 그렇다면 변하기는 달라진 것일까? 변하기는 그 그림을 벽에 매달기 위해 의자 위에 올랐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숨졌다.
아내는 나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앉아 씨를 간직하지 않았다. 아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죽음의 흔적이 너무도 생생한 물건을 품고 있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나와 앉아 씨의 인연이 시작된 곳, 그러니까 클린하우스에 앉아 씨를 갖다버렸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대형폐기물 신고필증’이 의자 몸통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할리데이비슨 아저씨가 갖고 갔다. 아내는 그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내는 용역업체를 불러 지하실을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나의 지하 망명정부는 그렇게 완전히 소탕됐다.
안녕, 세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