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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Jul 09. 2021

교차로 생쥐의 죽음

8차선 교차로의 횡단보도 한가운데 작은 생쥐가 나타났다. 아주 어린 것은 아니었지만 털이 성기고 빛깔이 연한 것이 이제 막 혼자 다니게 된 모양 같았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생쥐를 발견하고 탄성을 내뱉는다. 여자들은 연신 어머머, 어떡해를 연발했다. 중앙선 부근에 서있는 생쥐는 아직까진 오가는 차에 치이지 않고 있었지만 위태해 보였다.




가만히 있어, 라고 누군가 소리쳤지만 생쥐는 조금씩 발을 뗐다. 몸집이 조막만하고 시야가 낮은 생쥐에게 멀리서 무섭게 달려오는 차들은 보이지 않나보다. 생쥐가 교차로의 중앙 방향으로 주저주저 나아갔을 때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하고, 동시에 교차로에 멈춰섰던 차들도 양방향 직진신호를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태로운 눈빛을 생쥐에게 고정시킨 채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자들의 탄성이 고조된다.




생쥐는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조금 못 미친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다는 걸 감지라도 한 듯이.




그 순간, 가장 먼저 신호를 받고 출발한 흰색 레저용 차량이 생쥐가 서있는 곳을 여지없이 지나가버렸다. 여자들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남자들의 탄식이 낮게 깔린다.




흰색 레저용 차량이 지나간 자리에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생쥐의 사체가 있었다. 뒤따르던 검은색 승용차가 그곳을 지나려던 차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돌린다. 도저히 더는 지켜볼 수가 없다는 듯이.




사람들은 생쥐 한 마리의 목숨에 가슴을 죄던 서로의 모습을 보았다. 무언가 가슴 뭉클함을 안고 말없이 발길을 재촉하며 각자 의문을 떠올린다. 해로운 동물이라며 덫을 놓아 죽이기도 하는 생쥐 따위의 죽음이 왜이리도 모두의 마음에 걸리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그렇게 느끼도록 조물주가 미리 설계를 해 놓아둔 것이라 생각할밖에.




문득, 동생의 죽음을 무던한 얼굴로 유튜브 방송으로 논평하던 어느 국회의원이 떠올랐다. 어느 정치인의 비서실 부실장의 죽음도, 어느 위안부운동 대표출신 국회의원의 오랜 수족이 화장실 샤워기로 목을 졸라 자살했던 일도 떠오른다. 좌파는 다 죽어야 한다던 어떤이의 포스팅과, 우파는 다 죽어야 한다던 어떤이의 포스팅도 머릿속을 스쳐간다. 모두가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인구의 얼마를 줄여야 한다던 사람도 생각났다.




그들도 교차로의 생쥐를 같이 보았다면 가슴을 졸여댔을 것이다. 그런 가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면서, 대체 어떤 것들에 영혼을 빼앗기면 다른 사람들을 교차로 한가운데로 밀어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남보다 잘되고픈 마음이었을까. 나만은 살아남고픈 마음이었을까. 좋은 걸 더 많이 갖고픈 마음이었을까. 뭣이 되었든 그것들은 악마나 다름없는 것들임에는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 후 교차로의 생쥐를 한번 떠올리자, 후, 하고 한숨이 나온다. 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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