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 오 쇼콜라

by 이유

베이비시터 일을 몇 주간 하게 되었다. 무프타 거리 가까이 위치한 집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몇 주간 지내면서 근방의 빵집에서 쓸 수 있는 식권을 보수 비슷한 것으로 받게 되었다. 아이가 하원을 하면 꼭 빵집에 가서 간식을 먹어야 했다. 나는 아이와 빵집에서 나란히 뺑 오 쇼콜라를 먹었다. 뺑 오 쇼콜라뿐이 아니었다. 에클레어 쇼콜라, 까눌레, 밀폐유, 각종 타르트 등등... 맛있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매일 파리의 페이스트리를 줄 테니 고추장을 평생 먹지 말라고 악마가 제안을 해도 바로 수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입만 열면 가벼운 농담을 해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가만 보니 그 사람 덕에 모든 사람들이 화기애애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너무 촐랑거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나랑 둘이 있을 때면 말과 동작의 파동이 잔잔해졌다. 그 사람이 민박집을 떠나던 날 나는 그가 빈속에 새벽 기차를 타지 않도록 아침밥을 차려줬고,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매일 이메일을 쓰고 읽었다. 몇 줄일 때도 있고, 몇십 줄일 때도 있었다. 그는 말 주변이 없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메일을 보냈다. 내가 파리의 어디에 갔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었다.


그러다가 내가 뺑 오 쇼콜라에 빠진 것이다.

나는 매일 뺑 오 쇼콜라를 먹었다. 이 빵집 저 빵집 매일 하나씩. 어쩔 땐 두 개씩. 그 사람에게 보내는 메일에도 뺑 오 쇼콜라는 매일 등장했다. 저는 오늘 아침에 뺑 오 쇼콜라를 먹었어요. 어학원 끝나고 뺑 오 쇼콜라를 사 먹었어요. 장 보러 오다가 새로운 뺑 오 쇼콜라 맛집을 발견했어요.

어느 날 그가 물었다.

‘뺑 오 쇼콜라가 뭐죠?‘

나는 왜, 그가 당연히 뺑 오 쇼콜라를 알 거라고 생각했을까.

‘뺑 오 쇼콜라는 초콜릿이 든 크루아상이에요.’

라는 말은 너무 간단했다. 그 사람의 질문은 정곡을 찔렀는데, 나의 대답은 정답일지언정 부실했다.


그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해서 일상에 적응하던 중이었다. 메일을 주고받은 지 몇 주가 되자 그가 서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답장이 평소보다 늦었을 수도 있고, 메일의 길이가 짧아졌을 수도 있다. 그가 서운해하니, 미안했다. 그러다가 내가 왜 그에게 미안해야하나 싶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자라났다. 나는 하루 이틀 메일을 쓰지 않았고, 어느 날 그는 내게 뺑 오 쇼콜라 먹느라 답장이 늦는 거냐고 물었다.

그 후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한두 번 더 메일을 보내고는 더 이상 쓰지 않았다.


나의 파리 체류도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은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파리가 그리웠고 뺑 오 쇼콜라가, 그 바삭하고 고소하고 촉촉하면서 달콤했던 뺑 오 쇼콜라가 그리웠다. 서울에는 파리에서 먹은 것처럼 맛있는 뺑 오 쇼콜라가 없었다.

어느 날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연락이 끊어지고 계절이 하나 바뀐 후였다. 농담하듯 얼굴이나 보자고 해서 나도 가볍게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주말 종각역에서 만나 삼청동까지 걸었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잘하는 집’에서 단팥죽을 먹었고, 그가 ‘첫 번째로 잘하는 집’은 어디에 있냐고 농담을 했다. 그는 더 이상 오롯이 정적을 즐기거나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쫓기듯 농담이 계속됐고, 나는 어느 것이 농담이고 진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제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달라지더니 무언가를 자꾸 말하려다 말았다. 나는 느려진 시간이 못 견디게 어색해서 안녕히 가세요! 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외치듯이 말했다.

“그때 왜 답장 안 했어요.”


그는 또 어떤 정곡을 찔렀다. 나야말로 지금껏 농담만 한 사람처럼 당황해서

“저한테 화가 나신 것 같아서요.”

했다.

그가 손을 내밀었던가 어땠던가. 굳은살이 배긴 손의 감촉은 기억이 난다.


그때 왜 답장 안 했어요.

이 말은 당시에 듣기가 괴로웠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안경테에 잠깐 내려앉은 저녁 햇빛 같은 것, 어색한 표정, 결심한 듯 움직이던 입모양 같은 것.

그 순간 나는 분명 어떤 정곡을 찔렸다.

나는 그가 어떤 맥락 같은 것을 붙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반면 나는 맥락도 없고 부실하고 무작위의 시간 안에 있었던 것이다. 비록 두 사람이 같은 페이지에 있지 않았더라도 그 시간의 맥락은 분명 존재했으리라.

이제는 파리에서처럼 맛있는 뺑 오 쇼콜라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맛있는 빵집이 하나 둘 생기더니 이렇게 되었다. 파삭하고 피부가 바스러지는 뺑 오 쇼콜라를 먹다가 그날 종각역의 냄새가 기억났다. 책상 위에 흩어지는 부스러기를 손으로 쓸어 모았다. 한 데 모아서 가만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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