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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Jul 04. 2023

내향인의 관찰일기(열정적인 사람은 나와 무엇이 다른가)

누나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우리 공연 끝나고 해외여행 갈 거거든?
진짜 완전 재미있으니까 너희 가능하면 시간 다 비워놔.


처음 극단에 들어간 날,

아직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나에게

공연이 종료 후 해외여행 가야 하니 시간 비워놓으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선생님 - "우리 여행은 돈 많이 들고 가는

호화 여행이 아니고, 정해진 만큼만 들고 가서

여행지에서 다 해결하는 거야!

진짜 여행 가면 에피소드 하루종일 생긴다니까.

저번 여행에서는 안 그래도 부족한 돈 A가 가방에서

꺼내다가 바람에돈이 흩날리는데

슬로우모션으로 샤랄라 되면서 난리 났었지.

B는 좋다고 수영장 물을 마시질 않나.

얘들이 베개싸움 하는데 위아래 없이 마구 갈겨버리더라.

그리고 고급반에 C라는 친구 있는데

걔는 완전 장난 아니야!

달리기도 남자들보다 더 빠르고

수영도 라이프가드 있는 얘보다 훨씬 잘해.

내가 구명조끼 입고 물속에서 허우적 되고 있는데

다른 얘들은 신경도 안 쓰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더라.

C가 나 구하러 오는데 겁나 멋있었어.

C는 영어도 못하면서 마사지 싼데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처음 이야기 한 가격이랑 다르니까 막 손짓 발짓 해가면서

나 매우 앵그리 했어! 하면서 말하는데 완전 웃기더라."


선생님의 여행 관련 추억 보따리가 뿜어져 나오는데

C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긍정의 평가가 유난히 많다.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이야기와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C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고, 머지않아 C누나를 볼 수 있었다.


그날은 공연에 사용할 무대배경의 지지대를

만들어야 하는 날이었다.

선생님 - "그러니까 합판에 시트지를 붙여

무대 배경을 만들었는데, 이거를 지지할

지지대를 만들어야 해! 이거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들 - (정적)


나는 여러 아이디어와 방법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 아이디어가 생각처럼 되지 않았을 때

그 책임과 원망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그러한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멀끔 멀끔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C누나는 달랐다.

C누나 - "그러니까 이걸 세우면 된다는 거죠? 우선 샘플 하나 만들어보죠.

줄자 가지고 와봐. 가로 00에 세로 00 대각선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볼펜 가지고 와봐. 00cm 0개, 00cm 0개

만들어야 하니까 너는 각목에 표시해 놔.

톱질조와 망치질조 나눠서 2인 1조로

작업하는 거야 알겠어?"


C누나의 지시에 모두가 일사불란해지기 시작했다.

C누나의 강단 있는 모습에 넋 놓고

다음 오더가 있기를 기다린다.

이런 게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다는 느낌일까?


시간이 흘러,

선생님께서 고급반 공연이 마무리되면

기초반이 준비 중인 작품별로

멘토를 붙혀주신다고 이야기하신다.


선생님 - "야 C가 멘토 맡게 되는 팀은 준비 열심히 해라!

C는 전화로도 대사 체크하고

새벽에도 장문의 문자 보내고 장난 아니다!"


실제로 단체톡방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C누나는 엄청 열정적이었다.


C누나 - "선생님 00 씬에서 감정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뒤이어 올라오는 많은 유튜브 영상들)

이 정도 간추려 봤는데 참고할만한 거 확인해 주세요!"

선생님 - "3번째 영상 이거 참고하면 되겠다."

C누나 - "그러면 3번째 영상을 베이스로 하되 2번째 영상에서는 이거 가져오고,

4번째 영상에서 이거 가져오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돼요?"

선생님 - "ㅇㅋ"


C누나는 자신이 맡은 배역에 정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하면 캐릭터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닌 서로 합을 맞추는 것이기에

파트너에 대한 요구사항도 정확하였다.


C누나 - "나 이 씬에서는 이런 감정선을 잡고 싶은데

그러면 네가 더 강하게 나와줘야 하거든?

이때 목을 좀 더 세게 졸라주라."


C누나를 관찰해 보니

C누나의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고

실력은 연습을 통하여 나오며 이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C누나는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엇이든 다 해냈기에..


고급반의 공연이 마무리가 되고

C누나가 우리 팀의 멘토를 맡게 되었고, 우리가 연습하는 것을 보며 한숨을 쉬셨다.

C누나 - "너희 지금까지 연습한 거 맞아? 너희 다 따로 놀고 있어. 어떻게 한 작품에서 세 작품이 나오는 거야?

지호야 넌 잔동작이 왜 그렇게 많아? 왜 계속 뒤뚱거려?"


뼈 때리는 솔직함과 함께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세세하게 피드백해준다.

C누나 - "대사를 보고 읊으려 하지 마. 우선 상태부터 파악해. 지금 이 대사는 왜 하는 것 같아? 그전에 무슨 일 있었는데? 행동이 어색하다고? 대사에 맞는 행동을 생각하지 말고 의지를 생각해! 의지만 있으면 행동은 따라오니까. 그리고 같은 동작이어도 의지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으니까 의지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해."


C누나는 대본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캐릭터의 상태와 의지 등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이렇게 해! 가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종종 이야기하신다.

삶은 돼지고기는 뜨거운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 일에 경험이 있는 자는 그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나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한다. 삶은 돼지고기를 한번 더 삶으면 더 맛없어질게 분명하다고..

오늘따라 유난히 수육이 당기는 날이다.


C누나를 보며 내가 배워야 할 것을 조용히 되새겨 본다.

1.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가져라.

  -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고 실력은 연습에서 나온다.

  -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끊임없이 연습해라.

2.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라.

  - 이때 사적인 감정은 들어가지 않는다.

  -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라.

3. 내가 최고라는 자존감 가져라.

  -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다른 사람이 날 믿어줄 거라는 생각을 버려라.


나도 C 누나처럼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보지만,
난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C누나처럼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모습에 좌절했을게 분명하다.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을 통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는지,
나와 맞는 형태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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