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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Jun 23. 2023

나만 가깝다 생각했나요?




친하다고 생각했던 누나와 밥을 먹었다.

누나는 극단에서 만난 사람이다.

소심한 사람으로서 이 누나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쾌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극단에 처음 온 날 연습 종료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말없이 앉아만 있는 나에게 편하게 이야기를 걸어 준 것도 누나였다.


"지호야 너는 극단 왜 가입했어?"

"(쭈뼛.. 쭈뼛) 저요? 남들 앞에서 당당해지는 법을 연습하고 싶어서요.."

"그러면 그냥 여기에서는 네가 되고 싶었던 모습으로 행동해 버려,

어차피 이곳은 연기하는 곳이 자나. 지금 그 캐릭터를 배역 맡았다고 생각해.

너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정의한 순간

너는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거야.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되는 거야"


누나의 이야기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내가 봤을 때, 누나는 극단에서 쾌활하고 재미있으며

고민이란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저희 영업 종료가 00시 까지라

마지막 주문받을게요.

추가 주문 하실 것 있나요?"

"괜찮아요. 이것만 먹고 갈게요"


막창이 익어가는 것을 기다리는데 종업원이

곧 마감시간임을 알린다.


이 가게가 문을 닫는 것처럼

우리가 준비하는 연극도 무대에 서고 내려오면

모든 게 끝이 나겠지?


짧지도 길지 않은 시간

그동안 같이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는데..

이 공연이 끝나면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동안 많은 이야기도 못 나눠 봤는데

왜 이야기 나누지 못했을까?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음에도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는데..

여기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었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것은 개인 능력이구나.



"누나 이제 다음 주면 공연이 끝난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뭐가 그렇게 아쉬워?"

"여기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는데, 이게 끝나면 못 볼 수도 있잖아요"

"너 극단 그만둘 거야?"

"그건 아닌데 지금 사람들과 지금의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그렇구나.. 근데 난 MBTI가 극 T라 그런가 살짝 잘 모르겠어 ㅎㅎ 

우리가 서로 같은 무대를 준비하지만 같은 작품을 준비하는 인원들 말고는 교류하기 힘들잖아.

난 나와 사건 사고가 있는 사람들이랑은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 외 사람들은 잘 모르겠어.

나와의 접점이 없었잖아. 만약 너도 작품을 같이 하지 않았더라면 너에 대해 이렇게 

알아가고 친해지지도 않았을 것 같아. 저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어떻게 친할 수가 있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이지 않았을까?"

"진짜요? 누나는 극단에서 항상 밝으시고, 어디서나 잘 어울려서 모두랑 친한 줄 알았어요."

"나 A언니랑 이렇게 가까워진 것도 1년 반만이야. 나랑 사건. 사고가 없는 인원들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렇구나.. 나만 동떨어져 있고, 나만 단체에 못 낀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만 빼고 모두들 친한 것은 아니었구나..
나는 같은 공간,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좋고,
모두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게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 도 있겠구나.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매우 잘 믿는 편이다.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이 서면

내 모든 것을 줄 만큼 나의 모든 것을 오픈했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 모두를 너무 쉽게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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