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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Aug 31. 2023

시합에서도 상대 배려할래?

“400m 트랙 10바퀴 돌 거야! 한 바퀴에 2분씩, 시간 넘기면 다시 처음부터 달린다. 출발 삐익!”


복싱 시합을 앞두고 체육고등학교에서 복싱부 선수들과 함께 운동한 적이 있었다.
선수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구슬땀을 흘렸다.
취미로 운동을 시작하여 관장님의 권유로 프로 데뷔전을 준비하는
나와는 운동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관장님 : “원래 복싱은 프로랑 아마추어랑 스타일이 다르니까, 체고 얘들이랑 스파링 하면 많이 맞을 거야. 만약 너희가 지금 상태로 체고의 속도를 잡는다? 그러면 너희가 챔피언 해야지”

나 : “예 많이 맞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스파링을 하기 전, 관장님께서는 결과에 실망하지 않도록 긴장을 풀어주셨다.

체고생들과 함께 몸을 풀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쉐도우를 한다.

주변 신경 안 쓰고 내  운동하려 했지만, 선수들의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외부에서 온 우리를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스슥 슥슥 슈슈숙 슥 수숙” 그들은 화려한 몸놀림으로 나의 기를 죽이기 시작한다.

비슷한 체급끼리 스파링 상대를 맞추었고, 내 차례가 되기까지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체고 감독님 : “들어가, 빼지 마. 주먹 안 나와? 주먹 내. 도망가지 마. 빼지 마라니까!”

땡! (30초 쉬는 시간)

체고 감독님 : “너 그렇게 할 거면 짐 싸. 뭐 하러 운동하고 있어? 똑바로 안 해?”

선수 : “죄송합니다.”

땡 (쉬는 시간 종료)

체고 감독님 : “너 한 번만 더 뒤로 무르면 이따가 따로 보는 거야”


체육고의 운동 분위기는 체육관의 운동분위기와 달랐다. 감독님의 질책에 링 위의 선수들 뿐만 아니라 링 아래의 선수들 또한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의 스파링 차례가 되었고, 나는 링 위로 올라갔다. 상대선수와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우리의 주먹다짐은 시작되었다.

“퍽, 퍽 퍼퍽 퍽” 1라운드는 사정없이 맞기만 했던 것 같다. 관장님의 이야기대로 체고생의 스피드는 빨랐고 프로선수들과 다르게 스텝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여 거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30초, 쉬는 시간)

관장님 : “지호야, 주먹을 상대가 있는 곳을 향해 던지지 말고, 우선 주먹을 던져. 상대의 리듬을 읽고, 상대가 이동할 곳을 예측해서 길목을 잡으며 들어가면, 언젠간 기회는 온다”

나 :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할 힘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쉬는 시간 종료)


“퍽, 퍼퍽” “퍽” “퍼퍼 퍽” “퍽” 

조금씩 상대의 주먹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이따금씩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관장님 : “들어가, 물러서지 마. 상대 맞았잖아. 계속 몰아. 몰아. 주먹 내. 들어가”

나의 주먹이 상대에게 꽂혔고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애써 몰아넣은 상대를 놓아주고 만다.


관장님 : “지호야, 왜 놔주는 거야. 들어가. 몰았으면 끝까지 쳐.”

답답한 나의 모습에 관장님은 끊임없이 소리치신다.

스파링이 종료되고, 우린 관장님의 차를 타고 다시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관장님 : “000(같이 시합 준비하는 동생)은 오늘 잘했어! 이대로만 하면 문제없어. 지호야, 너는 왜 그래? 상대를 몰았으면 이제 너가 쳐야지. 몰아놓고 놓아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 : “예. 다음에는 놓아주지 않겠습니다.”

관장님 : “너, 설마 체고 얘들 배려한 거야? 일반 체육관 선수들한테 맞으면 감독한테 혼날까 봐?”

나 : “아닙니다..”

관장님 : “지호야, 너 그 성격 안 버리면 시합에서도 똑같이 나올 거다. 너가 링 위에서 적당히 하는 것이야 말로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는 거야. 너는 실력이 문제가 아니야. 지금 그 정신이 문제야”


관장님 말씀이 맞았다. 나는 상대를 몰고 나서도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혹여나, 상대 선수가 이 스파링 종료 후 감독님한테 혼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상대한테 10대 맞고, 겨우 2대 때리면서 그 2대 마저도 상대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의 눈치 보는 성격은 링 위에서도 나타났고, 

연습하며 몸에 베인 상대를 몰아넣고 주먹을 내지 않는 습관은

결국 시합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결국 나의 눈치 보는 습관은 시합장의 링 위에 올라가기까지 했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결과로 만들었다.

나의 눈치 보는 습관이 노력의 과정마저 물거품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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