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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Jul 02. 2023

저는 스물여덟 젊은 꼰대입니다.  군대에서 배웠어요.

나는 장교로 군 복무를 하였고,

군대는 내가 경험한 첫 사회생활이었다.


스물네 살에 한 그룹의 책임자로 첫 시작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당시의 내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의 대원들의 부모님과 통화하며

우리 대원들 모두 문제없이 전역시키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게 정말 웃긴 일이었던 것 같다.

내 앞가림하기도 힘들면서...


그만큼 우리는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엄청나게

많은 고난? 과 역경? 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수많은 좌절과 분노 행복과 기쁨 등 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와 같은 길을 밟게 될 후배들이

나와 같은 실수들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후배들이 들어오면 이것저것 나의 경험들을 이야기 하며 충고를 하게 되었다.

 

<선배님과 나>

선배님 - "반갑다. 난 선임소대장이고 내 번호니까 저장해라.

비상연락망 보내줄 테니까 부대 간부 번호 저장하고

부서장들 그리고 선배님들한테 연락 돌려라."

나 - "필승! 예 선배님, 신경 써줘서 감사합니다. 부대 간부 번호 저장하고

부서장 및 선배님들에게 연락 돌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필승!

선배님 - "내일 올 때 박카스나 음료도 한 박스 정도 사 오고. 인사드리면서 돌리게"

나 - "예 필승!"


소대장으로 부대 배치 후 선배님에게 연락이 왔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군기 잡힌 소위였기에

선배님이 알려주신 대로 번호를 저장하고, 연락을 돌렸다.

부대장님, 작전과장님, 인사과장님, 군수과장님, 각 중대장님들 및 선배님들까지..

연락해야 할 사람들이 어림잡아도 열명이 넘는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고 그분들의 존재 자체도 오늘 처음 알았기에

할 말도 딱히 없지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필승! 소위 국지호입니다. 이번 0중대 0 소대장으로 명 받았습니다.

아직은 한참 부족하겠지만, 부족한 만큼 더 노력해서 부끄럽지 않은

장교 및 후배 되겠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내 포부를 밝힌다.

"ㅇ ㅇ" " ㅇ ㅋ " " 알겠다 " "내일 보자"  등등..

나의 간단한 포부만큼이나 간단한 답변들이 오기 시작한다.


부대에 출근하고 선배님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출근하면 중대장님께 보고하고,

퇴근하기 전에는 중대장실 들려서 중대장님께

일과 보고 및 추후일정 확인해야 한다.

중대장님께서 먼저 도와주라 이야기 꺼내기 전에

너희들이 옆에서 눈치껏 돕는 것은 기본인 거 알지?

너희는 소대장이지만 너희 소대뿐만 아니라

중대원 전체를 살피고 중대장님의 계획을 깨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중대장실 커피포트에 물이 비어있던가

쓰레기통이 차있던가 하면 다 소대장들의 관심 부족이니까

수시로 확인 잘하고!

수첩은 안 들고 왔냐? 다 기억할 수 있어?

옆에서 누가 말하면 빠짐없이 기록하는 습관 들여라.

다 너희들 군생활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야.

박카스 챙기고 참모 선배님들한테 인사하러 가자.


선배님 : (똑,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000등 3명입니다.

참모 선배님 : 어 들어와!

선배님 : 필승!

참모 선배님 : 이야 후배 들어오더니 얼굴 폈네? 무슨 일이야?

선배님 : 예 선배님, 이번에 들어온 신임소위들 소개해드리려 왔습니다.

나 : 필승! 소위 국지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참모 선배님 : 어,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쟤한테 많이 물어보고,

도움필요하면 한번 더 스스로 고민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연락해라.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 : 예 감사합니다!


선배님 : 저 참모님 좋으신 분이니까 연락 자주 해라.

너희가 필요한 자료들 다 가지고 계실 거다.

나 :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 내가 너희들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시키니까 꼰대 같지?

그런데 다 이게 다 너희 위해서야. 지금 저기 앉아 계신 선배님들은

다 우리와 같은 길을 걸으셨던 분들이다. 네가 하게 될 고민들을

이미 경험하셨고, 각자만의 스타일로 헤쳐나가신 분들이야.

너희가 나중에 고민 있거나 문제 발생했을 때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분들이다.

일부러 연락 돌리게 시키고 인사 도는 것이 너희들 얼굴 트게 해주려고 하는 거야.

난 소대장 처음 배치받았을 때, 선임 소대장이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생활했는데,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한 번도 연락드린 적 없는 선배에게 연락드리는 게 가장 힘들더라.

난 내 후배들이 다른 곳에서 욕먹고 무시받는 게 싫다.

후배는 선배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지만,

선배는 후배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시에 나는 선배님의 말을 전부는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소대장으로서 많은 경험과 성장이 있었고

나에게도 후배가 생겼다.


<후배와 나>

나 :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단 네가 충분히 고민해 보고 물어봐야 한다.

내가 생각한 소대장으로 가장 중요한 거는 빠른 시일 내에 소대를 장악하는 거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무엇인가 바로 바꾸려 하지 마라.

소대원들의 마음을 얻기 전까지는 긍정적인 시선보다 부정적인 시선이 많을 거야.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안보인 느 곳에서 너를 시험하러 들 거야.

너만의 스타일로 헤쳐나가겠지만, 먼저 경험해 본 결과

1. 현행 시스템에 먼저 적응해라.

 - 그 과정 속에서 모르는 것들은 부사관 병사 막론하고 물어보고 직접 배워라.

2. 네가 배운 내용과 현행시스템 중 다른 것을 파악해라.

 - 상황적인 문제인지, 몰라서인지, 지금 이게 편해서 인지 등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3. 스스로 고민해 보고 변화의 필요성이 있으면 교육해라.

 - 무작정 바꿔야 한다가 아닌, 어떠한 이유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위 과정을 밟는 게 좋더라.

네가 소대원들의 마음만 얻는다면, 얘들은 네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거야.

진짜 하루하루 재밌게 보낼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 자신을 챙기지 말고 얘들 먼저 챙기고 맨 마지막에 너를 챙겨야 한다.

후배 : 예, 알겠습니다.


후배가 들어오고 나도 내가 생활하며 느꼈던 것들을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강요하지 않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 참고사항 정도로만 이야기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선배님들에게 연락이 온다.


<선배님과 나>

선배님 : 야 너 후배관리 똑바로 안 하냐?

나 :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선배님 : 중대장님들 다 계신대 사후강평 중에 얘 와꾸(얼굴지칭하는 은어) 돌아가더라?

나 : 죄송합니다.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선배님 : 지호야, 너 잘못 아닌 거 아는데 쟤 저렇게 두면 나중에 욕먹는다.

넌 니 후배가 다른 곳에서 욕먹고 다니면 좋겠냐? 네가 후배들한테 뭐라 안 하는 건 알겠는데

결국 나중에 후배들만 힘들어진다. 필요한 부분은 제대로 지적해라.

나 : 예, 선배님.


<후배와 나>

나 : 내가 왜 불렀는지 알지?

후배 : 예. 알고 있습니다..

나 : 그래, 나한테 연락오기 전에 너도 얼마나 많은 연락받았겠냐..

후배 :...

나 : 그런데 선배님들 이야기하신 게 다 너 위해서인 건 알지?

혹여나 선배님들 말씀 중에 잘못 알고 너한테 뭐라 한 거 있니?

후배 : 다 맞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너무 피곤해서 잘못된 행동 나왔습니다.

선배님들 말씀 의도도 다 알고 있습니다.

나 : 그래.. 고생했고, 다음에 보자.


어쩌면 선배님들과 내가 꼰대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후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욕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만약 저 친구가 내 후배 아니었더라면,

출근을 하던 안 하던 와서 개판을 치던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젊은 꼰대는 스물여덟 살에

한 부서의 장이 아닌 사회초년생으로

사회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나의 지위 때문에

나를 충분히 숨기고 살아야 했었다.

두려워도 안 두려운 척했으며,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했다.


이제는 타인이 아닌
본연의 나를 표현하는 연습
나의 감정을 마주 보는 연습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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