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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Sep 25. 2021

신문배달

 새벽 3시, 동이 트기 전 어둠은 칠흑보다 짙다. 나와 엄마는 아파트 단지 노인회관 앞에 신문이 잔뜩 쌓여 묶여 있는 것을 확인한다. 가끔 특보 등으로 인쇄가 늦어질 때는 직접 신문사로 찾아가 신문을 직접 받아와야 한다.  

 처음으로 할 일은 아파트 노인회관 건물 안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신문지에 광고를 끼는 것이다. 앉아서 작업을 하는 탓에 자동 센서가 달린 등에 우리가 일정 시간 감지되지 앉아 불이 꺼지면 나는 팔을 휘휘 내저어 불을 다시 켜야 한다. 어둠 속에서 하는 일이지만, 어둠은 싫다. 어둠 속에서 떡을 썰던 한석봉의 어미처럼 엄마는 아랑곳 않고 반복적으로 신문을 열고 광고를 끼워 넣는다. 이쯤대면 엄마는 불이 필요 없어 보인다. 서늘한 바닥 위에서 앉아 찬기가 엉덩이부터 단전까지 올라오지만 밖이 아닌 것이 어디냐 하는 감지덕지로 마음으로 광고를 끼운다. 반으로 접혀있는 신문을 하나하나 펴서 광고를 꼼꼼하게 끼워 넣고 차곡차곡 다시 접어 쌓는다.


 그다음 일은 광고가 다 끼워진 신문을 카트에 싣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신문이 접힌 쪽은 그렇지 않은 쪽보다 두껍기 때문에 한쪽으로만 쌓으면 안 된다. 20부, 30부씩 순서를 요리조리 바꿔가며 쌓는 것이 중요하다. 무게중심이 잘 맞지 않으면 배달 도중 신문 카트가 쓰러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광고가 많은 날은 신문이 두꺼워져 한 카트에 다 실리지 않기 때문에, 양 옆주머니와 카트 아래 바구니까지 요령 있게 끼워 넣어야 한다.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신문이 잔뜩 쌓아진 카트를 비닐로 잘 싸야 한다. 함박 함박 내리는 눈에 머리와 어깨, 발끝은 젖어도, 신문이 젖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비가 쏟아지는 장마 때는 더 필사적이다. 갱지로 만들어진 신문이 젖어버리면 페이지가 서로 붙어 읽기도 힘들고, 다음 장으로 넘길 수도 없다. 카트를 비닐로 싸는 것은 당연하고, 우산까지 씌워주어야 한다. 가끔 그 새벽 3시에 카트에 씌워 두었던 우산을 훔쳐가는 돌아이도 있고는 했다.

 구독 세대가 표시된 카드는 매일 잊지 말고 챙겨야 한다. 가끔, 어떤 호수에는 신문을 우유주머니에 넣어달라거나, 문구멍에 넣어달라는 문구가 쓰여있기도 한다. 그들의 특별 요청을 깜빡하면, 신문사로 불만전화가 갈 수 있으니 유의하여야 한다.


 드디어 준비작업을 마쳤다면 이제 신문을 배달할 차례. 일단은 구독 카드에 적혀있는 신문의 개수대로 카트에서 신문을 꺼내어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파트 한 단지에는 약 15개의 동이 있다. 한 동은 12층에서 15층 사이이고, 한 층마다 약 6개의 호수, 그러니까 3개의 입구가 있다. 그 무거운 신문을 끼고 계단을 오르면서 배달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엄마는 가장 높은 층에 도착해서,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한층씩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방법을 사용한다. 엄마는 15개 동의 구독 세대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구독 카드도 필요 없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어둠을 뚫고 내려오는 것이 나는 아무래도 무서웠다. 센서등이 켜졌을 때 나를 놀라게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편을 택한다. 가끔 1층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고단한 취객이라도 있으면 아주 민망한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 4층 정도에 도착하면 계단을 타고 잽싸게 내려온다. 한 동을 마치고 내려오니 엄마는 이미 카트를 끌며 다음 동으로 이동 중이다.


"도와줄게 엄마. 같이 가."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지기 싫은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엄마 쪽으로 뛰어가 신문 카트 손잡이를 빼앗아 끈다. 잡아 끄는 신문 카트가 가볍다. 아침이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이 아파트 단지에 신문을 배달하는 것이 엄마의 두 번째 잡이었고, 나는 자주 엄마를 도왔다. 고등학생 때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책상 앞에서 졸음을 참다 갔고,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시절에는 마지막 상영작을 관람하러 온 영화 관람객들을 안내하고 곧바로 엄마가 일하던 단지로 찾아가서 돕고는 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빠를 대신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엄마. 그 무게를 알기에 엄마를 돕고 싶어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둠을 걷던 나.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는 매일매일이 작은 불빛 조차 없는 곳에서 더듬거리며 걷는 느낌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이 아파트 단지가 눈에 선하다. 신문을 거진 다 돌리고 나면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해는 왼쪽으로는 아파트 한 동을, 오른쪽으로는 분리수거장을 둔 그 길 사이에서 났다.

  해가 나기 시작하면 주변은 언제 어두웠냐는 듯이 밝아져 있었다. 동이 트는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봉긋 솟아나 주변을 밝히는 해는 희망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그 상징을 이해하기에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러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 속을 한참 가로질러 다니다가 마침내 뜨는 해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나는 버텼다. 그 해를 보며, '그래, 해가 뜨는구나' 하며 다가올 하루를 안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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