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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Sep 24. 2021

휴전

 동생이 군에 있을 당시 아빠는 점점 심해지는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곳은 전에 있었던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과는 달랐다. 알코올 의존증뿐만이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고 치료받았기 때문에, 그곳은 요양 병원이라기보다는 정신 병원이었다. 그간 술독이 쪽 빠진 아빠는 수척하고 퀭해 보였다. 나는 아빠를 방문할 때면 꼭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를 방문하는 기분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빠는 가족에게 죄인이었으니까.


 아빠가 종이를 접어 만든 백조를 스윽 내쪽으로 밀었다.


"여기서 이런 걸 가르쳐 주더라고, 손이 떨려서 잘하지는 못했어"


 희고 꼿꼿한 종이로 만들어진 백조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맞아. 아빠는 손재주가 좋지, 좋았었지'


 초등학생 입학 전 아빠가 내 공책과 가방에 반듯한 모양으로 내 이름을 써주었던 것을 잠시 기억해본다. 아빠는 통기타도 곧잘 다루었다. 통기타를 치며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부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는 손으로 하는 것은 모든지 자신 있었다. 이제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려 아무것도 잘하지를 못하게 되었다. 기타도 집에서 없어진 지 오래다.


 아빠는 내 눈을 쳐다보지 못한다. 아빠는 술 없이는 이제 그 누구의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의 자아는 술에 잡아먹힌 지 오래다. 술에 취해있지 않은 아빠는 무언가가 어색하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오래 전의 아빠는 어디 아빠의 깊은 곳에 아직도 숨어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내 '아니야, 아빠가 어땠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아빠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야'하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창 밖을 멍하니 보았다. 우리 집과 병원은 걸어서 고작 15분 거리. 창 밖으로는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보였다. 아빠는 집에 가고 싶었던 거겠지.


"수리야, 아빠는 여기가 정말 싫어.. 아빠 멀쩡하잖아."

 

 나는 사실 정말로 편했다. 매일 반복되는 싸움으로 가족들과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더 이상 아빠와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 아빠의 건강도 문제였다. 가끔씩 아빠가 고꾸라질 때면 아빠는 항상 내 이름을 외쳤다.


"수리야!!"


하는 외침에 달려가 보면 아빠는 거품을 물고 꼿꼿해 있었다. 가족들은 아빠를 정신없이 마사지해야 했다. 혀를 깨물었는지 거품에는 피가 섞여 나온다. 기도라도 막힐까 엄마는 아빠 입에 손가락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어 거품을 빼낸다. 아빠가 정신을 차릴 즈음에는 우리의 정신이 쏙 빠져있었다. 처음 일어나는 일도 아닌데 아빠의 발작 때마다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이런 일상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에게 아빠의 입원은 휴전과 같았다.  


 정신 병원은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과는 달리 가족의 동의 없이는 환자 자의로는 퇴원할 수 없다. 우리 가족이 휴전을 끝내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갈 마음을 먹어야지만 아빠는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종전 같은 것은 없다. 가족의 끈이 이어져 있는 한 이 싸움에는 끝이 없다.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감정이 팽팽히 맞섰다.

 '이게 맞아. 아빠는 아픈 사람야. 마음이 고장 난 사람.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게 맞아. 정말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래?' 하는 마음.

 그 반대편에서는 '아냐, 사실 네가 편하자고 아빠를 가두고 있는 거야. 너는 정말 아빠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해? 아빠를 봐. 무서워하고 있잖아'하는 마음.

 아빠가 내 이름을 외치던 때를 다시 한번 떠올리다 지레 화가 나 얼굴이 붉어졌다.


'왜! 왜 자꾸 내 이름을 불렀어! 그럼 내가 마음이 어떻겠어..'


 끓어오르는 미움과 동시에 휘몰아치는 동정심. 이건 어떻게 정말 안 되는 걸까.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건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버거워 고개를 떨구었더니 이번에는 백조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결국 얼마 오래가지 못할 화해의 손길을 결국 잡았다. 아마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얼마 뒤에 아빠는 퇴원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쟁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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