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아빠가 혼자 베란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담배를 꾸벅꾸벅 피우고 있었다. 집은 이미 담배 쩐내로 가득 차있다. 이미 거실 벽지는 담배 때로 누렇게 물들어 있은 지 오래다. 아빠는 애연가이고, 베란다에서도 거실에서도 주방에서도 당신이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어디서든지 피기 때문에 나는 그러려니 했다. 이런 일로 실랑이하는 것은 나만 손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작게 한숨을 쉬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려는 데 아빠가 갑자기 '껄껄껄' 웃는 것이 들렸다. 그래서 유심히 보니 아빠가 술에 취해 혼자 지껄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형수님, 그게 아니라요. 아이참, 형수님은 그걸 모르시네.' 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아빠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형수님이라니..?' 나는 베란다와 맞닿아 있는 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아빠의 대화를 숨죽여 엿들어보았다.
'내가 알죠, 형수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래도 그렇죠, 어떻게 애들을 두고 떠날 수가 있어요?'
'애들이 얼마나 많이 컸는 줄 알아요? 내가 형수님 딸들 얼마나 이뻐했는지 알죠?'
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아빠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외숙모와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의 외숙모. 이국적인 외모를 가졌던 외숙모는 시골 출신인 외삼촌과는 달리 우아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4남 1녀 중 유일한 딸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삼촌만 많았다. 방학이 되면 내 동생과 나, 그리고 외사촌들은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 모여서 방학을 보냈다. 외숙모는 가끔씩 시골집에 내려와 우리에게 떡볶이를 해 주시고는 했는데, 기존의 평범한 레시피와는 달리 '토마토 케쳡'을 넣어 시큼 달달한 맛을 추가한 외숙모의 떡볶이는 외숙모의 외모처럼 이국적이었지만 특별했다. 안타깝게도 외숙모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아빠를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빠에게로 다가갔다.
"아빠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어어 수리 학교 다녀왔어? 잘 왔다. 아빠랑 얘기하자."
"무슨 얘기. 나 피곤해."
피곤하지 않았다. 아빠의 입에서는 씻어도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역겨운 냄새가 났고, 술과 담배 냄새로 온통 절은 아빠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몇 살인지, 무슨 학교에 다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당신이 온전한 당신이었을 때의 기억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기억했다. 아빠는 과거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의 과거에 관심 갖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아빠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는 아는 것, 그래서 지금의 아빠와 비교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내게 더 상처였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은 지금의 알코올 중독 아빠였다.
"그래 알았어. 들어가서 공부나 해."
아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인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 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그건 내가 가장 잘 안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가족들에게 다가왔다. 질척거렸다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술에 취한 아빠를 상대하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다. 엄마는 낮밤으로 일했고, 거기에다가 아픈 아빠와 어린 두 자녀를 챙겨야 했다. 동생은 한심한 집구석이 싫어 겉돌기 바빴고, 나도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일 시간조차 없었는데, 아빠에게 귀 기울일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아빠가 혼자라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술을 마셨지만, 결국 술이 아빠를 더욱더 고립되게 만들었다.
그날 아빠가 정말 환각이나 환청을 겪어 외숙모와 대화를 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외로움에 사무쳐 누구와 대화를 하는 것 마냥 혼자 넋두리를 했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자기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아빠는 스스로를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