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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03. 2021

수리 아빠

"수리 아빠 요즘도 술 많이 마셔요?"

"수리 아빠 밥은 잘 드셔요? 이렇게 말라서 어떻게 해."

"수리 엄마, 수리 아빠가 어제도 외상 해 갔어. 아저씨 술 좀 적게 드시라고 해"

"수리 아빠가 어제 술 먹고 찾아왔었어. 자기 우리 집에 있냐고. 어제 어디 갔었어?"


 나는 동네 어른들이 아빠를 '수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동네에서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그 알코올 중독자가 수리, 그러니까 나의 아빠라는 것을 동네방네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첫째 딸이었던 나의 이름은 아빠 이름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동네 사람들이 아빠를 수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아빠가 스스로를 수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불만이었다.

 우리 가족은 술을 사러 나가는 아빠를 막기 위해 항상 애를 써야 했다. 안타깝게도 알코올 중독자는 알코올 섭취할 수 있는 장소와 때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알코올 중독이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 나 그리고 동생은 아빠가 술을 사러 나가지 못하도록 돌아가며 새벽 보초를 서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틈이 나면 몰래 술을 사 오고는 했다. 엄마는 아빠가 술을 사지 못하도록 용돈을 주지 않았고, 우리 가족들은 항상 밤에 지갑을 숨기고 잤지만 그래도 아빠는 외상을 지어서라도 용케 술을 사내고야 말았다. 아빠는 외상을 질 때 꼭 '수리 아빠 밑으로' 외상을 달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본인을 감추고 싶을 때마다 내 이름에 기대었다.


 우리 집 2분 거리에는 오래된 슈퍼마켓이 있었다. 아빠는 그 슈퍼마켓의 '반갑지 않은 단골'손님이었다.  엄마는 이삼일에 한 번씩 동네 가게들을 돌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외상값을 갚곤 하였는데, 그 슈퍼마켓도 그중 하나였다. 그날도 아빠는 집 앞 슈퍼마켓에 가 막걸리 몇 병을 집어 들고 "수리 아빠 밑으로 막걸리 두 병 달아주세요"하고 나왔다.

 그날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가게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간판도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지만 술에 취해 있던 아빠가 그 사실을 알아챌 리가 없었다. 황당한 새 주인은 아빠를 붙잡아 '당신은 누구냐'며 돈을 내놓으라고, 아빠는 '그러는 당신은 누구냐'며 사장님은 어디 있냐며 실랑이를 벌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빠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집 앞 슈퍼로 잠깐 나올 수 있냐고 물었다. 집 밖에 나와 슈퍼 쪽으로 걸으니 아빠와 경찰, 그리고 슈퍼마켓 주인이 보였다.


'으.. 쪽팔려 진짜. 교복이라도 갈아입고 나올걸!!' 나는 씩씩대며 걸었다.

 

"사장님 미안합니다. 내가 주인이 바뀌었는지 몰랐어요. 내가 여기 자주 와서 수리 아빠라고 달아놓으면 애기 엄마가 저녁에 와서 돈을 갚고 그랬거든요"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안 아빠는 염치는 있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니, 아저씨. 내가 아저씨를 언제 봤다고 외상을 줘요? 이거 진짜 웃기는 아저씨네. 그리고, 요즘 세상에 외상을 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술 취해서 뭐하는 짓입니까? 재수가 없으려니까 참" 경찰까지 대동하여 당당해진 주인이 말했다.


 나에게는 지긋지긋한 아빠였지만, 그리고 아빠 쪽에서 백번 잘못 한 상황이었지만 아빠가 당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내가 말했다.

"저기요. 그래서 막걸리 두 병 얼만데요? 이천 원? 삼천 원? 돈 삼천 원에 경찰까지 부르셨어요? 돈 드릴게요. 돈 드리면 되잖아요."

 나는 천 원짜리 세 장을 아저씨 손에 탁 쥐어주고 막걸리 두 병을 집었다. 그리고 옆에 있었던 경찰한테 가시 돋친 목소리로 "어떻게, 이제 경찰서로 가면 돼요?"라고 물었다. 경찰은 경찰서까지 올 필요는 없고, 아버지가 많이 취하셨으니 얼른 집으로 데려드리라고 말했다.

 나는 인사도 않고 아빠의 손목을 확 잡아끌고 집 쪽으로 걸었다. 아빠는 애처럼 "아빠 진짜 몰랐어!"라며 억울한 소리를 했다.


 나는 집 앞 엘리베이터에 다다르자 발을 쾅쾅 구르며 말했다.  

"수리 아빠! 수리 아빠! 제발 그놈의 수리 아빠란 말 좀 고만해!! 진짜 쪽팔린단 말이야!"

"야. 그럼 내가 수리 아빠지, 보리 아빠냐? 이 년이 부모가 낳아 주고 키워준 것도 생각 못하고."

"아빠가 나를 키웠어? 아빠가 언제 나를 키웠어, 엄마가 키웠지. 아빠는 맨날 술만 먹잖아!"

"너를 키운 게 내 마누라다 이 새끼야. 쪼꼬만 게 싸가지 없이." 아빠는 머리를 꽝 쥐어박고 내 손에 있던 막걸리를 낚아채며 웃었다. 결국은 내 돈으로 아빠의 술을 사다 준 꼴이 되자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느낌이었다.

 

 아빠가 슈퍼마켓 주인에게 요즘 세상에 외상을 지는 사람이 어디 있냐던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벌써 십수 년 전이지만 아빠는 아직도 수리 아빠 이름으로 집 주변 슈퍼마켓에 외상을 지고, 엄마는 아직도 수리 아빠 앞으로 달린 외상값을 갚는다. 세월은 흐르지만 아빠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컸고,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졌고, 아빠가 그때만큼 밉지가 않다. 이제 아빠를 보면 미운 감정보다는 불쌍한 감정이 앞선다. 그래서 이제는 학생 때처럼 이 모든 게 마냥 부끄럽지만은 않다. 다음에 한국에 방문한다면 아빠의 단골 슈퍼마켓에 가서 묻고 싶다. '아저씨, 혹시 수리 아빠 밑으로 외상 달린 게 있나요? 제가 수리인데요. 제가 갚아도 될까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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