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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4. 2021

배웅

 내가 호주로 다시 돌아가는 날 아빠는 웬일로 배웅을 하러 오겠다고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은 좀 싫었다. 아빠의 자살 소동으로 한 바탕 전쟁을 치른 후라 일단 아빠가 꼴도 보기도 싫었고, 엄마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고 죄책감이 들어 어째 아빠가 배웅하러 온다는 것이 반갑지가 않았다.


 아빠의 존재는 없으면 서운하고 화가 나면서 있으면 시한폭탄을 안은 것 마냥 골칫거리였다. 안타깝게도 알코올 중독자는 알코올 섭취할 수 있는 장소와 때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알코올 중독은 의지력이나 자제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병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기 전날은 몸 관리를 하기 위해 술을 피하지만 아빠의 경우에는 반대였다. 긴장이 되고 불안한 마음에 오히려 술을 더 찾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에 중요한 날에 아빠는 대부분 없었다. 내가 한국을 처음 떠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배웅하러 오지 못했다. 내 비행기는 새벽 1시 출발이었는데, 나는 술에 취해 잠든 아빠의 뒷모습에 인사를 하고 나와야 했다. 아빠는 알았을까, 내가 다시는 한국에서 살지 않으리란 것을.   


 그렇다고 아빠가 아주 모든 일에 부재했던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빠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나의 자존감이 하강했다. 내가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날이었다. 우리가 아빠를 처음 만나기로 한 곳은 동네에 있는 장어 전문 식당이었는데,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내가 택시를 타고 도착했을 때 나는 통유리 건너편에 있는 아빠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빠는 취해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가, 그리고 그런 가족을 가진 내가 부끄러웠다. 

  동생의 상견례 날은 어떠했는가. 보잘것없는 집안에,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은 내 동생을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동생은 그런 아버지를 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가족에게 죄인이었다. 우리 가족은 상견례 날 만이라도 잘 넘어가기를 빌며 아빠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며 보초를 섰다. 하지만 아빠는 잠깐의 틈을 타 집을 뛰쳐나가 술을 마셨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 아빠를 상견례 자리로 데려가야 했다. 술이 아주 취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동생을 비롯한 우리 가족은 온통 아빠에게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술을 마신 아빠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이상한 포인트에 갑자기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또는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 특히 상견례 자리는 아빠가 싫어하는 것 투성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그리고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 그 잠깐의 두 시간에 우리 가족은 땀으로 샤워를 했을 정도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은 나는 차라리 아빠의 부재가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런 것이 아니라, 없는 게 차라리 편하다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에 익숙해져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배웅을 온다니.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아빠가 공항에서 괜찮을까, 사람이 많은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놀랍게도 아빠는 묵묵히 나와 함께 체크인 데스크에 줄을 섰고, 무거운 짐을 체크인하는 것을 도왔다.

 아빠는 출국장 바로 앞까지 같이 오지는  않았다. 출국장 입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은 아빠는 더 이상 걷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여기까지만 배웅을 할 테니 이제 그만 가라고 했다. 나는 아빠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엄마와 함께 출국장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국장에 들어가기 직전 나는 저 멀리에 앉아 있는 아빠를 보았다. 겨우 50킬로는 넘었을까. 깡마르고, 뼈밖에 없는 아빠. 후줄근한 후드티에 다 떨어진 모자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빠. 

 아빠는 왜 출국장 바로 앞까지 와서 인사할 수 없었을까. 아빠는 미안해서 가까이 오지 못했을 것이다. 술의 도움 없이는 자기감정을 단 한마디도 표출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아빠가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항상 바닥을 친다. 내가 한국을 떠나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급상승한다. 나는 아빠를 그리워 하지만 가까이 있으면 버겁고, 아빠도 나를 사랑하지만 내가 가까이 있으면 괴롭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하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이라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서로를 그리워할 때만 행복한 것인가 하는 그런 슬픈 생각이 든다. 아빠와 나는 반비례관계이다. 같이 있으면 죽을 만큼 밉고, 같이 없을 때는 죽이 잘 맞는 그런 관계. 그리고 우리는 아마 이렇게 평생 반비례관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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