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기억으로 가보자. 30대의 아빠. 알코올 중독은 아니었지만 술은 항상 아빠 가까이 있었다. 친구들은 어찌나 많았던지, 우리 집은 항상 아빠의 친구들로 왁자지껄했고, 엄마는 손님 상차림에 정신이 없었다. 무슨 삼촌, 무슨 삼촌. 아빠의 친구면 다 삼촌이었다. 아빠와 짠하고 잔을 맞추면 다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가족 같은 녀석인데,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인데'라며 없는 살림에 퍼주기도 많이 퍼주었다. 나는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던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아서 아빠와 삼촌들을 구경하고는 했다. 입들은 얼마나 걸걸한지, 아직 어렸던 나와 내 동생 앞에서 상스러운 말도 서슴지 않았다. 아빠는 술을 원치 좋아했고 술을 자주 마시기는 하였지만, 이것도 다 '사회생활'의 일환이라는 핑계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때 아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아빠와 비슷한 길을 걷거나 아빠를 떠났다. 아빠는 이제 혼자 부엌 한켠에서 서서 술을 마신다. 술을 같이 마셔줄, 같이 잔을 맞추어줄 벗들은 이제 더는 없다.
40대의 아빠. 알코올 중독이었지만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을 정도였다.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직장도 다녔다. '그래, 천호는 술을 좀 많이 마셔서 그렇지, 술 안마실 때는 천호만큼 일 잘하는 사람도 없어." 젊기도 하고, 일재주가 있어 그래도 아빠를 불러주는 곳이 이때는 아직 있었다. 돈은 제 때 받아오지 못한 것이 문제였지만.
이때 아빠는 참 쥐뿔도 없으면서 호기로웠다. 술도 진탕 많이 마시고, 그러다가 다른 여인에게 한눈도 팔아보고.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다. 아빠가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것도 이때다.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구석 잘 돌아간다'며 물건을 부수기도 하고 엄마를 때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느라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잃어갔다.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빠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아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울타리 안의 사람들은 아빠에게 지쳐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려 했다. 아빠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아빠를 이토록 변하게 한 것일까. 다들 인생이 전환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회사가 부도가 났다던지, 가족의 죽음이라던지. 아빠의 삶은 망가진 계기랄 것이 없었다. 그냥 조금씩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이 서서히 망가졌다. 돌아보니 본인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50대의 아빠. 알코올 중독은 점점 심해져 이제는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하게 되었다. 젊은 날의 호기는 점점 객기로 바뀌었고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빠는 술을 앞세워 초라한 자신을 감추었다.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빠는 고장 난 시계가 되었다. 반복된 블랙아웃에 오늘은 며칠인지, 자녀가 몇 살인지, 가족의 생일이 언제인지 아빠는 더 이상 기억할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이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아빠를 피하기 시작하니 모든 사람이 자기를 무시한 다는 피해망상까지 가지지 시작했다. 아빠는 계속 폭력적이었지만, 점점 약해지고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스스로를 감당 못해 나동그라지기 일쑤였다.
정신만 망가진 것이 아니었다. 폭음하는 시기의 아빠는 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빠가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미음이나 미숫가루 등을 아빠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라도 먹여야 했다.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술을 멈추어야 했던 시기, 아빠는 금단 현상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가족들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체념하게 되었다.
아빠는 올해 딱 60세가 되었다. 아빠는 몇 번을 말해주어도 호주와 한국의 계절이 반대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이 추우면 추우니까 거기서도 날씨 조심하라고, 한국이 더우면 더우니까 거기서도 날씨 조심하라고 한다. 많이 망가져 버린 아빠에게 나는 이제 답답한 마음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아빠가 점점 나아지겠지라는 마음을 접어두었다. 그런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아빠는 항상 그 반대로 나아갔으니까. 희망을 붙잡고 있었을 때 나는 가장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희망의 끊을 놓았더니 오히려 절망에서 한걸음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나는 60대의 아빠가 어떠한 모습일지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아빠가 어떠한 모습이든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