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 후 나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내가 아빠를 참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별일 없이 지내다 갈 수 있을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이번 방문도 잘 버텨내야지라는 마음 가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아빠의 상태는 바닥 중의 바닥이었다.
아빠는 이미 같은 해 큰 교통사고로 거의 죽을 뻔했다. 술에 취했을 때 난 사고였다. 다행히도 아빠는 살았지만 극도로 약해진 몸과 몇 개월 간의 병원 입원과 금단 형상,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빠는 섬망 증세를 심하게 겪고 있었고 아빠의 알코올 중독 증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뇌가 고장 나 버린 아빠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잘 알면서도 인내할 수 없었다. 나쁜 년. 나는 완전히 고꾸라져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아빠의 얼굴에 물을 부으면서 소리 질렀다. 아빠는 어차피 내일이 되면 기억조차 못할 거다.
"씨발 제발 정신 좀 차려! 이러다 아빠 진짜 죽는다고!"
엄마가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울었다.
"엄마 나 진짜 죽고 싶어. 나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아. 나 집에 가고 싶어. 나 보내줘."
엄마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저 나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와 내가 뭐가 다를까 싶다. 그때는 정말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딱히 노래를 듣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얼굴에 물이 흠뻑 젖어 정신 못 차리는 아빠와 울며 불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나를 보고 나서 일어날 일은 뻔했다. 엄마의 잔소리. 혀가 꼬여 말도 잘 못하는 아빠의 변명. 엄마와 아빠의 싸움. 나는 그 소리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뭐라도 해야 했어서 이어폰을 귀에 박아 넣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를 찌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리야! 수리야!!”
너무나 절박하고 처절한 목소리가 이어폰 사이를 찢고 들어왔다. 난 불행을 직감하고 거실로 한 걸음에 뛰쳐나갔다. 아빠의 몸은 이미 베란다를 넘어 허공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빠를 붙잡고 있었다. 엄마는 내 이름만 반복해서 외쳤다.
“수리야! 수리야! 제발 수리야!!”
나와 엄마는 죽을힘을 다해 아빠를 붙잡고 끌어올렸다. 아빠는 거의 집 안쪽으로 내팽개치어졌다. 내 팔다리는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렸고, 몇 초가 안 되는 시간에 내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엄마는 창문을 잠겄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버럭 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이번에 엄마가 아빠를 잡지 못했으면, 즉사였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이미 여러 군데 부수어졌던 몸이 부서짐을 넘어 아작이 났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12층이다. 제아무리 끈질긴 인생이었다 해도, 12층에서 떨어져서 살아날 수 있는 행운은 없을 것이다.
알코올이라는 악마는 아빠를 참 꾸준히도 참으로 끈질기게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악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아빠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아빠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이기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술에게 빼앗겨 버린 나약한 사람. 벼랑 끝에서 내쳐지기 만을 기다리는 사람. 그날도 아빠의 머릿속에서 악마가 속삭였던 거였겠지. 죽으라고, 그냥 죽어버리라고.
어디선가 읽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말로는 사고사 또는 고독사라고. 통계에 따른 것이라 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우리 가족은 아주 얇게 얼어붙은 물 위를 가로질러 걷는 것 같은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삶을 산다. 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런 삶 말이다. 이렇게 걷다 보면 평지로 올라설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렇다면 깨진 얼음 사이의 차가운 물속으로 빠져버리면 그게 끝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