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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1. 2021

내가 닮은 사람

 나는 불행하게도 알코올 중독인 아빠를 두었고 그와 이혼하지 않는 엄마를 두었다. 이런 가족과 살면서 나는 내 미래가 어떠할까 두려웠다.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날까 봐'가 아니라 '아빠를 닮은 사람이 될까 봐'.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니랑 네 아빠는 너무 똑같아서 상극인 거야." 

"똑같긴 뭘 똑같아! 엄마 악담해? 나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어. 그리고 나는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엄마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아빠와 달랐다. 아빠는 계절에 따라 색이 변하는 나뭇잎들만 봐도 눈물을 흘리고는 했지만, 나는 학창 시절 엄마 이외의 사람에게는 절대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아빠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털털하고 보이쉬한 성격에 활발해서 친구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아빠는 멘털이 유리처럼 약해 작은 일에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어했지만, 내 멘털은 철갑처럼 두꺼웠다. 나는 아빠처럼 약하지 않았다. 나는 새벽 아르바이트 퇴근길에서 내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간 놈을 따라가 잡아 내 앞에 무릎을 꿇게 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해볼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것을. 나는 사실 아빠와 다르기 위해 무진장 애썼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보니 내가 아빠와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꽁꽁 숨길 수 없는 그런 날이 왔다. 

 나는 내가 눈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내가 눈물을 참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눈물을 참지 않기로 한 나는 울고 싶을 때 당당히 운다.  

 내가 낯을 가린다는 것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왜냐면 나는 더 이상 밝은 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밝고 활발한 척을 하는 것은 어릴 적 나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예전의 나는 참 용기 있었구나 새삼스레 생각한다. 지금은 꼭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면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내 멘털을 붙잡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이제 독하게 사는 것이 싫다. 힘들면 무너지고 아프면 아파한다. 옛날처럼 '정신 차려. 멘털 똑바로 붙들어'하며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면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하고 나니 내가 아주 질척거리고 스킨십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를 닮은 것이다. 아빠는 술이 취하면 엄마를 방마다 쫓아다니며 껴안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에게 매달려 가슴을 쪼물딱 거렸다. 나는 그런 아빠가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을 가끔 나에게서 본다. 

 내가 성격이 불같고 욱하는 것은 물론 살아온 환경의 영향이 있겠지만 태생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이기도 하고 이건 분명히 아빠 쪽에서 온 유전자이다. 아빠는 가끔 화가 나면 이성을 잃고 날뛰고는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이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와 다투었던 나의 파트너가 이런 말을 했다. "넌 가끔 화가 나면 괴물로 변해." 빌어먹을. 나는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는 하지만 그토록 아빠와 닮기를 부정했던 나는 아직도 나에게서 아빠와 닮은 구석을 찾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내가 미워했던 아빠의 성격. 내가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을 나에게서 본다. 예전에는 아빠를 닮으면 아빠 같은 삶을 살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아빠를 닮았어도 나는 그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빠를 닮는 것이 더는 두렵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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