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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첩

by 김화연


김화연


거울 속 얼굴을 본다

거울은 내 얼굴의 목격자

표정을 관리해주던

표정관리사

거울 보지 않고 분첩 없이

어떻게 좋은 날 지내왔겠는가

거울은 시절 따라 분꽃,

장미꽃 모란꽃으로

나만의 달을 만들었고

먹구름이 섞인 빗물에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하얀 얼굴로 기러기를 불러들이고

붉은 꽃잎으로 부리를 물들였다

분첩을 열면

혈색이 도는 표정이 여전하지만

내 얼굴보다 앞서 거울이 늙고 만다

거울 속에는 수많은 얼굴이 들고 나지만

무심히 바라보는 거울 속 눈길은

자신의 굽은 등을 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시절이 적막하다

가까이 보지 않으면

기미와 주름도 지워버리는

오래된 거울은 함부로 바꾸거나

내다 버리지 말 일이다

분첩의 날들이 먼지가 끼어 흐릿하더라도

거울을 바꾸는 일

내 얼굴을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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