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의 들녘 풍경
텍사스 남부의 어느 오후,
해가 지평선 너머로 기울기 직전이면 도로변과 들녘에
블루보넷이 껴안듯이 퍼진다.
특히 달라스에서 남쪽으로 차로 약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루이스빌이나 보몬트인근의 농로를 지날 때가 그 절정이다.
나는 친구 앤드류와 함께 한적한 언덕길을 달리고 있었다.
도로 동쪽 언덕 위에는 이미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블루보넷 야생초 보호구역’이 있었고,
서쪽 언덕에는 은빛 바람개비가 힘겹게 돌아가는 풍력
발전 단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보호구역 입구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풀밭으로
내려갔다.
푸른 바다처럼 펼쳐진 블루보넷 밭 사이를 걷는데,
땅에서 서리가 내렸다가 녹아내린 듯 투명한 물방울이
꽃잎에 매달려 있었다.
설레는 마음에 손가락으로 꽃을 살짝 건드리자, 마치 바람에 반응하듯 꽃잎들이 고개를 흔들며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그날 앤드류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늘 블루보넷 피는 계절이면
농장 창고 옥상에 올라가셨어. 해 질 녘이면 저 언덕 너머
붉은 노을이 온 벌판을 물들일 때, 밭에서 일하던 일꾼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말들이 멈추어 서서 저 꽃빛을 바라보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셨지. 할아버지께선 그 모습이
‘하늘과 땅이 서로 손잡는 순간’ 같다고 하셨어.”
아름다운 자연은 누구라도 시인이 되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법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블루보넷 밭 한가운데서 해가
주홍빛으로 빨갛게 타오르는 광경을 보았다.
물결처럼 펼쳐진 자줏빛 노을 아래,
꽃빛이 곱게 어우러지는 순간은 마치 마음속 깊은 어딘가가 촉촉해지는 듯한 전율을 안겨 주었다.
그때 옆에서 앤드류가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은 블루보넷을 ‘텍사스의 푸른 꽃‘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표현이지.“
바로 그때였다.
저만치 목장에서 돌아오던 말무리가 풀숲 사이를 헤치며
걸어오고, 그 머리 위로 매처럼 보이는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회전하면서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블루보넷 너머로 스며드는 마지막 햇살,
바람에 살랑이는 꽃망울,
그리고 말과 웅장한 날갯짓을 하는 새까지.
나는 그 순간 ‘텍사스가 품은 자유와 애잔함’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전해지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꼈다.
블루보넷은 텍사스 지역 작품에서 종종 봄의 상징으로
언급된다.
미국 소설가 래리 맥머트리는 소설 《텍사스 이야기》에서
“봄날, 드넓은 블루보넷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서,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작고 여린 존재인지를
깨닫는다”며, 블루보넷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시인 애나 윌킨슨 역시 ‘블루보넷 들판’에서
“푸른 꽃 너머 저녁노을이 빛날 때, 세상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숨을 내쉬듯”이라고 노래한 바 있는데, 이 표현은
블루보넷이 지닌 ‘순간의 찬란함’과 ‘다시 일어서는 희망’을 담고 있다.
텍사스 남부의 뜨거운 태양아래 푸른 물결을 이루는
블루보넷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무게와 환희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우리 역시 언젠가 사라질 한때의
꽃이지만, 다시 일어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것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