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feat. 시간의 마법)
인생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다. -미셸 드 몽테뉴-
창문 너머 희미한 달빛이 새벽의 장막을 헤치고 스며든다.
내가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은 마치 시간의 사슬에서
허락받은 작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창을 열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침의 전령처럼 날아들고,
바람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내 뺨을 쓰다듬는다.
찻잔을 들어 올리면, 누군가의 배려가 녹아든 과일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마치 감미로운 시 한 구절처럼 나를 감싼다요거트 위에 올린 너트는 손끝의 정성을 간직한 채 입안에서 고소한 화음으로 울린다.
십 년도 훌쩍 넘긴 옷을 걸친다.
비록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시간이
빚어낸 포근함이 되어 나를 감싼다.
길을 나서면 학생들이 햇살처럼 환히 웃으며 인사한다.
그들의 미소는 마치 얼어붙은 겨울을 녹이는 따스한
봄바람과 같다.
동료들과 주고받는 가벼운 농담은 마치 인생이라는 연극의 짧은 막간처럼, 지친 영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학생들의 기발한 질문이 내 정신을 살며시 흔들어 논다.
질문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교내 라운지에서 스낵을 집어 들며, 마치 무대 뒤에서
다음 장을 준비하는 배우처럼 오후를 맞이할 힘을 충전한다. 하루의 절반이 흘러가고,
나는 다시금 나 자신을 다독인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작은 고민이 하나 피어난다.
김치볶음밥인가, 비빔국수인가?
이 사소한 선택조차도 마치 운명의 여신이 건네는
수수께끼마냥 느껴진다.
비장한 진지함으로 고민한다.
어느 색의 메모지에 생각을 적을지 잠시 망설인다.
망설임 속에서 글이 피어나고,
그 글은 곧 내 하루의 훈장이 된다.
밤이 오면 초를 켜고 그 은은한 향을 맡는다.
촛불이 천천히 타들어 가듯 하루도 그렇게 사그라지지만,
나는 그 속에서 조금씩 채워진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소진이 아니라,
매일 덧칠해지는 한 폭의 그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