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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Apr 01. 2020

빨강, 크레용의 이야기

그림책마중물 1

지금까지 저는 빨강인 줄 알았어요. 

부모님들도 저를 빨강으로 불렀고, 선생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저를 빨강으로 알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무엇을 해도 잘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해도, 부모님이 일러주신 대로 해도 저는 빨강처럼 되지 않는 거예요. 저는 빨강인데 말이죠. 딸기색도 못 그리는 빨강이고, 오렌지를 그려도 안 되는 거 있죠. 친절하게도 주변 친구들과 사람들은 저를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테이프는 제가 부러져서 그렇다고 허리에 테이프를 붙여주었고, 가위는 포장지가 너무 끼여서 그런다고 살짝 잘라주기도 했고, 연필깎이는 너무 뭉툭해서 안 되는 거라고 깎아주었어요. 저는 답답하고 아팠지만 참았어요. 그래도 저는 빨강처럼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새 친구를 만났어요. 제게 갑자기 바다를 그려봐 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빨강이라 바다를 못 그린다고 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라고 했어요. 요구하지 않고,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냥 해 보라고 해서 바다를 그린 뒤 계속 그렸어요. 청바지도, 파랑새도, 파나 고래도 그렸어요. 저는 ‘빨강’이 아니라 ‘파랑’이었거든요. 그때서야 사람들은 저를 ‘파랑’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예쁜 파랑이었어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는 없을까요?

누군가가 저를 세워두고

저도 내가 잘 모르는데

저에 대해서 

“당신은, ◯◯◯ 같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사람이잖아요.”

한 마디로 요약하듯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든요.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들도 저를 알다가도 모르게다고 합니다.

저와 학창시절 9년을 같이 다니는 친한 친구도 저를 잘 모른다고 하고, 같은 직장에서 10년을 다니고, 출장도 다녀봤지만 잘 모르겠다고 하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명명하기 좋아하고, 자기가 저에 대해서 다 안다고 이야기 하는 걸 들어보면 ‘정말 내가 저런가?’싶기도 할 정도로 헷갈려요.    


“너 예전에 이랬잖아.”

“너 그런 애 아니었어?”

“거, 봐 내 말이 맞지?”

“그럴 줄 알았어.”

가 아니라     


“응, 그랬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누가 뭐라고 하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소신껏.”

“내가 보는 것 보다, 자기가 보는 게 더 잘 알지 않아?”

라는 말로 있는 그대로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남의 잣대로 저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저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보여 지는 모습이 내가 아닐 수도 있어요. 주변의 시선에 저를 맡겨야 할 때도 있었고, 제가 그 상황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독특하거나 신기한 사람으로 보여질까봐 그랬거든요. 다른 사람들, 주변 사람들이 저를 같은 시선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고, 한 가지 모습으로만 잣대를 들어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충조평판(충고하고 조언하고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답게’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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