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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Nov 13. 2024

EP.3 정말로 잘하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

살다 보면 멈추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전선 위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앉은 참새들,

시멘트벽 사이에서 자라난 민들레 꽃,

손 위에 살포시 닿아 녹아버린 작은 눈송이.


어느 것 하나 나를 불러 세운 것은 없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어 순간을 마음에 새긴다.




최근의 추위로 악화한 감기 기운은

골골대는 일주일을 선사해 주었다.

덕분에 아침마다 집안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코를 훌쩍이며 마른기침 소리를 내어야 했다.


요일의 개념이 희미해진 생활 탓에

날짜로 얼추 계산해 보자면, 5일 정도 되었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괜찮은 길을 찾아가고 있을지 모른

긍정적인 의구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금세 풀이 죽어버리는 사람.

머리만 싸매며 민하는 나약한 나를 자주 목격해 왔기에.


아무래도 근래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퇴사를 결정한 이

정말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달까.


창문을 열어 환기하며 바깥을 봤을 때

다행히도 창밖에 공룡이 지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기 덕에 잠시 멈출 기회(?)가 주어져서였는지,

조금 다른 일상을 마주해서였는지 싶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흘려보냈던 작은 습관들,

쉽게 지나쳤던 모든 순간.


구운 달걀과 시리얼을 먹으며

소박한 기침으로 시작한 나의 하루는

단순한 식단 조절 내지

귀찮음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조용히 내 삶을 응원해 준 의식이자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힘이 되었다는 '실제'는

꿈에서조차 생각한 적이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돌아오는 아침,

이 고요한 시간에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달걀 껍데기를 벗기며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작은 유리 볼에 차오르는 흰 우유와

그 위로 떠오르다 가라앉는 시리얼을 바라보며

결국 이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일까?’


의문을 품을 때마다

잠시 멈추어 내 마음을 돌아보기로 했던 다짐은

정말 다져져서 일어날 수도 없는 때가 돼서야

작은 긍정의 의문문이 되어 마음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내게 필요했던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아니라,

도약하기 위한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잠깐이 내게는 천년과도 같았을지라도 말이다)


양발을 적당 벌리고 멀리서 달려

더 멀리 뛰기 위해 발을 디딜 힘을 모으는 것,

것이 바로 삶에서 필요했던 잠깐의 ‘멈춤'이 아닐까.


앞으로만 가야 한다는 마음의 관성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잡아채서 멈추어야 한다.


그 멈춤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유와 위치, 방향까지 모두 확인한다.

날씨와 바람의 속도, 습도,

미세먼지 농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때론 멈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


되려 힘껏 준비한 상태로

한발 물러서야 하는 힘 빠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결국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우리네 인생이니까.


아무리 더 크게 도약할 힘이 된다 해도

실망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마치 바이킹을 타며 잠시 하늘에 붕- 떠 있는 상태로

속이 뒤집히는 아찔한 순간처럼,

무언가에 힘을 제대로 쏟았느냐의 사실과 관계없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고요한 멈춤이 있다.

언제나 그런 찰나의 정지가 찾아온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올해 매출액에 따라

다른 축제에 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 녀석은 죽지도 않고 매번 잘도 찾아온다.


단순히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

그 자리에 서서 모든 에너지를 응축하는 시간.


그 멈춤 매허무함으로 끝났더라면

멈춤의 원인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다음을 준비하는 충전의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  다음 도약을 위한 용기를 품는다.




내게도 작은 성공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도 있다.

모두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니

이렇게 애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아침 운동을 위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며 몸을 일으키길 수일째,

어느 날거울에 비친 내가

좀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하루의 감사한 이유를 적으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볼 때면,

정말 별다른 일이 없었던 날조차 '별' 의미가 있기도 했다.


“정말로 잘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고민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도.


그리고 그 진심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 분명히 안다. 안단말이다.


그러나 노력 대비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나조차 그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무수한 채찍질로 '나의 가치 없음'상처를 덧입혔다.


그래서 일상에서 내가 해낸 작은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과소평가했던 것이라고 덧붙여 주장해 본다.


이 주장에는 증인있었는데,

내가 이룬 작은 성취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거나

무의미하게 여기는 이들이 그런 부류였다.


속상하게.


이제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삶의 이정표가 되어

또다시 변곡점을 그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주장에 힘을 실어준 이들을 향한 원망도

이젠 소용없음을 안다.  

그들은 내 이야기에 그저 동의해 준 것밖에 없으니까.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음을,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나는 성공한 작가도 아니며

아주 대단한 업적이나 눈부신 성과가 없어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나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어쩌면 그런 순간이야말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가장 진솔한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늘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직선 코스가 아니기에.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지나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도전을 위해 물러섰다가 새롭게 시작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과정이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일 것이다.

그게 자기 일이라면 더더욱.

심지어 누군가에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그런 당신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서

이미 충분히 누군가에게 꿈이 될 자격이 있다.

불안 속에서 조금씩 단단지는 과정이려니 하며

이제야 납득하겠단 결심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준비와 충전의 시간이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아마 추진력을 얻어 처음엔 잘 뻗어 나가더라도

속도에 휩쓸리고 어느 순간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멈춤은 단순히 쉬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목표와 의미를 견고히 다지는 강력한 원동력 셈이다.


마치 차분히 아침준비하는 모습이

나를 위하는 작은 의식이 되어 있는 것처럼,

일상 속 작은 멈춤들이 쌓여 삶을 촘촘하게 엮는다.


온전히 가진 것이라곤 4년 된 경차 한 대.


막상 일에 쫓겨 제대로 된 휴식을 누리지 못하며

다음 달을 걱정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저 최선을 하는 것밖엔 어쩔 도리가 없다.

누군가가 잠시 멈춰서 바라보며 꿈꾸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에게 긍정의 이유이자

내일을 꿈꾸는 힘이 될 수 있다주장을 뒤엎기로 했다.


이제는 부정적 의심일랑 거두고 서로의 증인이 되어주길.

잘하고 있다는 정당한 논리를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란다.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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