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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Nov 20. 2024

EP4. 별점 5개가 주는 의미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

내 이름으로 쓴 글이 몇 개나 될까.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자기소개서를 첨삭하는 지금도

개인 블로그 외에 작성하는 마케터로서의 글도

내가 쓴 글의 주인공은 대개 타인이었다.


오늘은 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글은 평점 별 5개에 빛나는 작가가 쓴 글이니까.


이렇게 어그로를 끌었으니

결론을 제시해 놓고 선택권을 넘기는 것이

돌팔매질을 피하는 방법이기를 바란다.


별 5개라고 해놓고,

'이름 없이 쓴 글'이란 말이

다소 궁상맞거나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오히려 더 깊은 의미이며 울림이란 사실을 전하려 한다.


내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글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더욱 선명히 빛날 수 있었으니까.


별것 없다고 여겼으나

조금은 궁금한 두 문장의 구구절절함을

들여다봐 주기를 바라며,

때늦은 수요일 연재를 시작한다.





크몽에서 자기소개서 첨삭 일을 하며

약 50명 정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병원, 제약회사, 협회 등 각자의 목표는 달랐지만

저마다의 고민과 열망이 담겨 있음은 분명했다.


의뢰인의 열정과는 별개로

어떤 글은 어수선했고

어떤 글은 지나치게 간결했으며,

또 어떤 글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낸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그것이 비록 조금 서툴지라도 말이다.


이름 없이 그들의 글을 다듬으며 마주했던 첫 질문은

‘이 일이 단순한 문장 교정 그 이상이 될 수 있을까?’였다.


당연히 팔이피플로 끝내고 싶지 않았으니 고민했을 터.


내가 바라던 것은 '합격 턱걸이'가 아닌

커트라인을 넉넉히 남기고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스스로가 욕심이 많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마치 연예인의 매니저, 무대 연출가, PD, 상품 기획자.


감히 상상해 보건대 다양한 영역에서 대상을 빛나게 하며

더 좋은 것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돕는 이들과

비슷한 역할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내게 찾아온 무대 뒤 의뢰인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는 듯한 기분.

그렇게 매번 숨을 고르며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나의 존재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와 동시에 더 큰 책임감을 짊어졌다는 것.


어떤 분은 초안 작성 단계에서부터 막혀

약 2시간 통화 후에야

방향성을 잡아 자소서 작성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분은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문제점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일관성부터 문장의 흐름과 의미, 기업 분석에 이어

전체적인 첨삭의 방향성까지 설명하자

"이제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하며 

무상 수정 3회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 적도 있었다.


아이러니한 양면성을 가진 이 일이

단순한 기술 이상이란 사실은 매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의뢰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글'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나의 자취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이 조용히 그들의 길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이름이 없는.

그러나 내가 남긴 가장 강렬한 몸부림이었다.


여러 차례 다른 형태의 글을 마주하면서도

매번 동일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난 뒤 나는 첨삭 일이 더 좋아졌다.




일을 하며 내가 받는 별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의뢰인의 신뢰이며, 감사이자,

때로는 자신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다.


나에게 “너는 잘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그들 스스로에게도

“너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현재의 내게 몇 개의 별점을 주겠느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부족한 나를 알기에

가혹하게 평가하며 낮은 점수를 줄 것 같다.

사실 누구보다도 나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임을 알기에

뻔뻔하게 5개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부끄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함 속에서도 마음은 절절하게 전하며 걸어왔다는 사실.

진심을 별점으로 환산한다면

그때는 이윽고 별점 5개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고 무결함을 상징하는 진심이라기보단

내가 걸어온 길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걸어간 나의 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가 전에 거기에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내를 받는다.


길이 없어도 길임을 알 수 있도록.


이름 모를 이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며,

우리가 남기는 것은 단순히 우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숲에 나무를 심는 행동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당장에는 나무가 자라서 어떤 모습일지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 것.


단순히 한 문장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도

어느 순간 그들의 꿈에 닿으리라 믿고 걸어가는 것.

손끝으로나마 의뢰인들의 꿈에 연결될 수 있는 길이었다.




사심 없는 몸짓, 조용한 격려의 말,

심지어 출처가 없는 편집이라도

어느 모퉁이 길에 흔적을 남긴다.


이름 없는 글쓰기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신용과 인정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잠시 다른 세계에 코드를 연결하는 겸손의 행위가 아닐는지 싶어서.


결국엔, 알려지는 것보다 변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깊은 삶의 목적을 찾는다.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일이 더 크게 말하도록 선택하는 것.

확인 없이 안내하고, 영감을 주고,

연결하는 점 하나를 찍는 것. 


이름이란 닻을 제거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시대를 초월하여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길이 아닌 발자국 난 길을 바라보며

나 역시 더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다름없음을 믿는다.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더 천천히,

깊이 알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그들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며

그 과정에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영영 내 이름이 빛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 멈추지 않을 나의 글을.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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