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11월의 책)

그때 만들어진 작은 나무의 단단한 반석..

by 나비진

이 책의 주인공인 작은 나무의 삶.. 5살에 부모님을 잃은 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산에서 살았고 9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를 잃었다. 산에서 살았던 시간을 모른다면 아마 그냥 가슴 아픈 한 아이의 삶이라고 판단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산에서 살았던 5년이란 시간은 그의 영혼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몸의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고작 9살인 아이가 자신의 전부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잃고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지만 산과 함께한 시간은 그의 삶에 커다란 반석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커서도 그때 만들어진 단단한 반석 위를 걷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많은 순간들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울컥하기도 했다. 5살 아이의 시선에서 쓰인 그 담백한 문구들 속에 느낄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진솔하고 담백하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한 사랑이 느껴질 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치는 것이 좋아"

할아버지는 이렇게 한마디 하시고는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따라잡기가 훨씬 쉬웠다. 할아버지가 걷는 속도를 늦춘 것이다. P16


처음 작은 나무와 함께 걸어서 오두막으로 갈 때 키가 큰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으셨고 종종걸음으로 그 걸음을 쫓아가던 아이는 지쳤다. 그 지침을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에게 알리자 할아버지가 한 말과 행동이다. 할아버지의 아이에 대한 마음이 잘 느껴져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의지하고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졌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쳐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사라지게끔 만드는 것이 좋다는 할아버지의 말씀.. 지지부진한 생각들과 두려움,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들이 맴돌 때 나 또한 녹초가 되도록 몸을 지치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방울뱀이 작은 나무를 공격하려고 할 때 할아버지의 손이 방울뱀과 작은 나무의 얼굴 사이에서 바위처럼 버티고 있었는 장면은 나에게 뭉클함을 남겼다. 아이를 지켜낼 것이라는 그 단단한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이 사건은 작은 나무에게도 할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어 그 아이의 마음에 하나의 반석을 쌓아 올리게 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또한 자책하는 작은 나무에게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며 심지어 방울뱀 탓도 아니라고 하셨다. 또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P202)라고 한 할머니의 말씀은 나에게도 위안이 되는 말씀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을 우리는 참 많이 한다. 내 탓 아니면 남 탓이 일상적인 대화 패턴인 우리에게 할머니는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냥 일어난 일일 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상황에 맞춰 해결하면 될 뿐인 것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구의 책임을 묻기보다 그냥 받아들이고 내맡기는 삶의 태도는 정말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한다.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체로키인들의 관습.. 바로 자신이 태어난 계절에 부모님의 사랑, 고향의 모습. 아이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특히 여름에 태어나면 어른들인 그 계절 동안 계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는 나무와 새와 시냇물, 게다가 비와 바람에게서까지 아낌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좀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돌아갈 수 있는 집과 형제들이 있는 셈이었다. 다른 애들은 부모가 죽고 나면 외로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P255


할머니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들도 너의 탄생을 축복해 주었고 그만큼 너는 사랑받는 존재임을 강조하신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작은 나무 또한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자랑스러운 존재로,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40년을 '나는 축하받지 못하는 존재다'라는 신념 아래에 살았던 나에겐 그저 5살의 나이에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작은 나무가 부러웠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 없이 사는 삶은 매 순간 긴장감 속에서 사는 삶이었고, 얼마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사는 삶인지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못해준 말들.. 너는 특별한 존재이고 자랑스러운 존재이고 부모님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이 너를 축복하고 축하하는 존재였다고... 지금이라도 수천번 수백 번 해주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이가 태어난 8월 여름마다 엄마 아빠의 만남, 얼마나 많은 축복 속에서 네가 태어났는지.. 자연도 너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임을 되풀이해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대해서도 작은 나무에게 가르쳐주셨다. 이해와 사랑.. 두 가지의 단어가 같다는 것이다. 이해라는 단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한다는 의미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상대를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순간 나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될 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p75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p115~116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할머니가 말하신 두 가지 마음.. 몸을 꾸려가는 마음과 영혼의 마음.. 이 두 가지 마음 중 몸을 꾸려가는 마음에 더 집중을 한다면 욕심을 부리고 남을 해칠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영혼의 마음은 줄어든다. 하지만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고 말한다. 영혼의 마음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결국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구리잭이 심통을 부리고 싸울 듯 화내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역사가 있다. 내가 상대를 보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이다. 상대가 살아온 삶을 이해한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너구리잭과 할아버지의 일화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역사를 내가 다 알 수 없고 그 사람의 삶을 다 들어볼 수 없다. 그랬을 때 내가 보는 일부로 상대를 판단하면 안 되고 그 사람에게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역사와 삶이 있겠지라고 이해하려는 노력.. 그 노력이 나의 영혼의 마음을 더 커지고 강하게 할 것이다.

할머니가 아이였을 때 있었던 흰 참나무.. 벌목꾼들로부터 흰 참나무를 지키기 위한 체로키인들의 힘든 투쟁.. 모두가 녹초가 될 만큼 지친 그때 커다란 흰 참나무 한그루가 벌목꾼의 마차 위로 넘어졌고 마차는 박살이 난 뒤 벌목꾼은 길 닦기를 포기했다고.. 튼튼하고 잘 뻗은 나무가 넘어질 이유가 없는데 다른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진 그 나무의 영혼을 애도한 이야기는 나무 하나하나에도 영혼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자연 속 하나하나의 생명들, 그리고 우리 인간들 속에 있는 영혼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은 나무의 삶은 따뜻함만 계속될 줄 알았다. 마지막 부분에서의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정말 많은 눈물이 났다. 갑작스러운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이별.. 고아원에서의 학대.. 늑대별을 보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7살의 어린아이.. 할아버지가 오셨을 때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마음 아플까 봐 말을 못 한 아이... 버스 앞에서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으며 잡에 가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조차도 할아버지께서 아이가 선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참 할아버지의 교육방법이 대단하다 느꼈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교육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산에 다시 돌아온 뒤엔 작은 나무는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다. 작은 나무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 월로존의 죽음, 할아버지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함께했던 개들의 죽음.. 특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작은 나무는 '나는 세상이 끝장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 그의 마음이 나에게 너무도 잘 전달된 걸까. 그 아이에게 감정이입이 참 많이 되었다. 하지만 작은 나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분이 자신을 위해 새겨놓은 자국들은 깊은 행복을 나타내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함께한 시간은 행복이었고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자신에게 남겨놓은 그 행복의 자국들이 작은 나무에겐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작은 나무의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나의 영혼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작은 나무의 탄생의 축복은 나의 탄생의 축복이었고 작은 나무의 이해와 사랑은 나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었다. 작은 나무에게 불어닥친 태풍은 하나의 반석이 되어 그가 가는 길에 단단한 바닥을 마련해 줄 거라 생각하고 나에게 불어닥친 태풍 또한 하나의 반석이 되어 내가 가는 길에 단단한 바닥을 마련해 줄 거라 생각하며 그의 뒤이은 삶, 나의 뒤이은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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