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목련꽃 활짝 피어오르는 햇살 따스한 어느 봄날
그녀는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천국으로 떠났다. 어느새 햇수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해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두 아이의 엄마였고, 한 남자의 사랑하는 아내였다. 어느 소공동체 모임에서 첫 만남을 가졌었다. 엊그제 어느 원로 배우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의 동병상련 병명이 똑같이 함께 일상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던 날, 전혀 건강한 일반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3개월이 경과하도록 아무도 알지 못했었다. 3개 워 이 흐른 소공동체 모임이 있던 날 자그마한 소망이 있다고 기도 제목과 화살기도, 중보기도를 다 같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었다. 차라리 극심하든 경미하든 몸에서 느끼는 통증이라도 경험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했던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서른세 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머리카락이 한 올도 빠지지 않고, 부작용에 시달리는 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모임 멤버들은 회복될 거라고 아직은 젊으니 병상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사계절이 모두 흐른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치는 어느 겨울날 소복소복하게 세상이 온통 눈꽃으로 덮여 있던 이른 아침!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오늘내일이 고비라는 슬픈 비보르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평생토록 고통에 신음하여 힘들어하는 모습이 각인되어 기억하게 될까 봐! 이기적인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이튿날 하늘의 부름을 받아 영면에 들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별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아직은 떠나보낼 수 없다고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도록 오열을 했다.
시계의 초침은 째깍째깍 무심하게도 흘러가면 가고 그녀와 영원한 이별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날 남겨진 두 아이들이 생각나서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이 멈춰 지지지가 않았었다.
두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는 날까지만이라도 더 이 세상에서 살아있게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절규하면서 기도했던 그 모습이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자매님!
공원에 가면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환한 웃음을 띠고 있네요. 그 하늘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이렇게 빨리 떠날 줄 알았더라면 따뜻이 게 손을 잡아줄걸. 조금 더 따뜻하게 제 마음을 전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전에 마지막 모습 함께 지켜주지 못한 제 마음이 이렇게 아려오네요.
그곳 머나먼 천상에서는 건강하신 거죠? 이제 아프시지 않은 거죠?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자매님 하지만 제 마음속에 그 메아리가 울려 퍼져옵니다.
그 해 가을 마지막 단풍잎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던 깊어가는 계절에 자매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었던 게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