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20대인데 몸이 80대라네요

내가 아파야 남의 아픔이 보인다.

by 중랑천

정형외과 진료를 보려고 엑스레이를 찍고 앉아 있는데 내 이름이 불려진다. 할머니 한분이 나오시고 나는 진료실 의자에 앉는다.

“어허.. 앞에 진료 보신 꼬부랑 할머니 보셨어요? 그분 보다 엑스레이상 상태가 더 안 좋네요.”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화면에 걸린 내 뼈만 보고 이야기한다. 그 할머니는 80대이시라고 했다. 그리고 내 목뼈와 허리뼈 사진이 방금 80대 할머니보다 안 좋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찾아다니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괜찮다는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마상을 당했다. 너무나 차갑게 비유를 하셨고 방금 지나가신 할머니는 거동도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명의라는 의사 선생님 얼굴을 내가 보기도 전에 환자의 얼굴은 마주하지도 않고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아버렸다. 방법이 없을 것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을 잠시 가지고 왔던 내가 다시 무력해졌다. 그간 밤을 지세게 하던 괴롭던 통증이 말해주었다. 병이 심각하다고...

“이 정도 상태면 게임 끝입니다. 시술, 주사 뭐 다 소용없다고 보면 됩니다.”

한마디도 안 하고 있는 나에게 더 한말로 비수를 꽂는다. 게임 끝.. 그게 진단명에 적합한 글귀란 말인가. 내 표정에서 절망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셨나 보다. 아니면 명의는 명의인데 마음을 돌보는 눈치라고는 없으신가 보다 싶었다.

목과 허리의 디스크와 협착을 알게 된 건 7년쯤 되었고 최근 2~3년간은 일상생활도 힘들었다. 지금 아픈 건 이겨낼 수 있겠는데 정말 무서운 건 점점 더 심해질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40대에 이 정도인데 대략 80세까지 산다면..? 아찔한 두려움이다.

모르겠다. 의사는 진단을 정확히 하고 치료를 잘하면 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더 필요한 건 ‘위로’이다.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면 지금으로서는 그게 필요했다. ‘위로’라는 약을 먹으면 며칠간은 덜 아플 거 같았다. 왜 좋은 말 많지 않은가

'많이 고생스럽죠' '잠잘 때 불편해서 편히 못 주무시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어머님은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다. 초기에 발견이 돼서 병원 약을 드시고 3~4년은 잘 지내시는 것 같더니 요즈음은 한 해 한 해 안 좋아지시는 게 느껴진다. 올해 추석 때는 추석인지도 몰랐다 하시고 부엌에 한 번도 안 들어오셨다. 뭐 하시는지 모르게 자리에 앉아 계셨다. 치매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머님 파킨슨 진단 후 폭풍 검색과 책을 통해 어떤 병인지 알게 되었다. 몸이 점점 굳어가고 머리와 몸에 통증이 디스크 이상으로 심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머님은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각자의 통증을 겪고 있다. 누가 더 크고 적은 지는 가늠할 수 없다. 어느 날은 좀 낫다 싶고 어느 날은 죽겠고 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버텨내고 있을 것은 확실하다.

병원을 나오며 어머님이 생각났다. 전화를 한번 드릴까 하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왜 그 순간에 어머님이 생각났을까..

‘어머님 많이 불편하시죠' '잠은 잘 주무시고 계세요' '식사는 잘하세요’

이렇게 하면 될 것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를 잘 안 해서 서먹해서였을까.. 내가 위로받지 못했는데 누군가를 챙기고 싶은 여유가 없었을까.. 가족인 나는 하지 못하면서 처음 보는 의사에게 위로를 요구했다.

혹시 그동안 외로우셨을까. 각자 외로운 긴 밤을 보내왔을 텐데, 서로에게 위로를 하며 기대면 긴 밤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내일은 전화를 한번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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