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친구가 나를 추억한다면
뒤늦게 떨어진 바싹 마른 가을 낙엽이 볼에 스치운다. 머리털이 삐죽선다. 낙엽이 나를 멈춰 세웠다. 마른 가을 낙엽이 예쁘다며 하나씩 주워 사회책에 끼워 넣던 중학교 단짝이 생각난다.
"윤슬아 너 아까 왜 그랬어? 어디 아팠어?"
나는 윤슬이가 5교시 국어시간에 발표 도중 울먹거리면서 주저앉아버린 이유가 궁금했다. 점심 먹은 게 체했나?
윤슬이는 자주 체하는 아이였다. 오늘도 그랬나 싶었다. 그런데 윤슬이는 놀라운 답변을 했다. 말을 잘하고 싶은데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고 너무 떨려서 눈물이 나버렸다고 했다.
"저는 오늘... 발.. 표오.. 하.. 게.. 된... 유운... 슬...이라고.."
그 뒤로도 윤슬이는 가끔씩 발표를 하게 되면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지기 시작해서 목소리가 모기처럼 얇아지더니 다리가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리다가 꼭 울 것만 같았다. 윤슬이의 발표 순번이 되면 나도 같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윤슬이는 나랑 단둘이 대화할 땐 그렇지 않다.
‘김고은 너 오늘 앞머리 김무스 저리 가라다! 뽕 잘 살았다’
이렇게 나한테 먹히는 유머도 알고 있고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꺼내서 웃음 짓게 만들어준다. 윤슬이는 나랑 있을 때와 여러 명이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교실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단둘이 매점이라도 가게 되면 SES의 유진 어깨춤을 시작으로 미주알고주알 왈가닥 소녀가 된다. 윤슬이나 나나 비슷한 내성적인 우리 둘..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나는 윤슬이가 재밌다. 요즘은 I라고 하는 내성적인 성향의 윤슬이는 나에게는 E인 아이다. 둘이 있을 때 윤슬이의 이야기 속에는 매우 스펙터클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나를 디즈니 여주인공 공주로 만들었다가 과부 할머니로 죽게 하고 아니면 나를 무수리로, 윤슬이는 조선시대 왕비 민비가 되었다가 죽은 줄 알았더니 백년해로했다. 또 어느 날은 우리가 대학생이 되어 단체 미팅에서 4;5로 몰표녀가 되었다. (한 표 차이로 윤슬이가 항상 몰표녀였지만..) 또 우린 28세에 결혼을 하고 자녀의 이름까지도 지어져 있었다. 나는 외동아들을 낳았고 성은 권 이름은 태기, 윤슬이는 두 자녀로 아들딸 이름은 윤후 윤서.. 였다. 윤슬이랑 있으면 상상 속에 빠져들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기대되고 설레어진다. 똑같이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중학교 생활에 활력이 되고 참 재미있게 보냈다.
나는 윤슬이가 좋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같이 간다. 하물며 칸에도 같이 들어간다. 우리는 한시도 떨어질 수 없이 막역한 사이예요..라고 티 내고 있다. (암묵적으로 그때는 칸에 들어가 줘야 절친이라 했다) 활발한, 외향적인 친구들을 몇 명 사귀어 본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은 화장실에 나랑만 가지 않았다. 또 화장실 친구가 자주 바뀌었다. 칸에도 잘 안 들어왔다. 하지만 윤슬이는 변함이 없다. 항상 칸에는 나랑만 들어간다. 이렇게 윤슬이는 항상 그 자리.. 에 있는 친구이다. 보통 친구관계에서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다른 친구가 생기면 나를 떠날까’라고 자주 걱정을 하는 나로 써는 윤슬이는 정말 변함없는 든든한 친구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우리만의 꿈을 꾸며 자랐고 윤슬이는 선생님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면 홍시가 되어 말 못 하고 어버버 하던 그 중학생 아이가 교사가 되었다니 교단에 서있는 윤슬이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윤슬이는 아직도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 그것도 기간제 강사를 사춘기 아이들이 잘 따르겠냐며 혀를 내두른다.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베테랑인척 목소리에 힘주던 초자 선생님,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에게 휘둘려 쉬는 시간에 몰래 화장실 가서 눈물 훔치던 어린 20대 선생님.. 윤슬이도 비슷했을 터이다. 그런데 이제 모기 목소리는 안 나고 덜덜 떨리는 것도 없어졌다고 했다. 가~끔 윤슬이의 농담이 먹힐 때도 있어서 변성기 온 중딩이들 껄껄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도 윤슬이는 나를 웃게 했던 유머를 잘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아마 학교에서도 수업 준비보다 아이들의 개그코드를 찾고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친구 고은이는 내 추억의 단짝 친구이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다면 “윤슬~아 어디야” “윤슬아 오늘도 명동 갈까?” 내 이름을 정겹게 불러 줬을 거다. 교사가 되었다고 칭찬해 주었을 거고, 좋은 친구였다고 이야기해 주었을 거다. 왜냐하면 우린 닮았었고 넌 참 좋은 친구였으니깐..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서서히 멀어졌다. 그 친구도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며 대한민국 어딘가 살고 있을 거다. 멀고도 멀지 않은 곳에... 찬바람 부는 가을 끝 무렵에 생각이 나는 사람.. 오늘도 새삼스레 추억에 잠긴다. 바스락 낙엽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