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자리가 어디예요

열등감과 자존감 사이

by 중랑천

“선생님 자리가 어디예요? 드릴 거 있어서 교무실 갔는데 선생님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끼는 사탕하나를 꼬물손에 보여준다.

교무실에 내 전용 자리는 없다. 나는 40대 시간 강사이다.

이번 일하게 된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강사실이 마련이 안 됐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 한 켠에 원형탁자에서 보통 쉰다. 자리가 만들어준 나의 존재감은 이상하게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나는 학교 강사로 왔는데 이방인과 다를 거 하나 없는 느낌이 든다.

“응 선생님 자리가 없으니깐 할 말 있으면 쉬는 시간에 이야기해 줘”

아이는 왜 자리가 없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뭔가를 더 묻는데 바쁜척하고 돌아선다. 나는 나를 웃프게 표현할 때 보따리상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때 되면 이 학교에서 저 학교 옮겨 다니며 보따리에 물건을 팔 듯 계약서를 쓴다.


아이 둘 케어를 잘하기 위해 선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아이들과 하원을 같이할 수 있는 일, 학교 시간 강사를 하게 되었다. 보통 5~6교시면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일 끝나고 달려와서 아이들을 웃으며 맞아주고 간식을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절대 느낄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집에 오면 육아가 시작된다. 엄마표 영어, 엄마표 수학이라는 교육 트렌드에 나도 발맞추어갔다. 아니 온 열정을 불태웠다. 매일 영어책 읽기와 영어 영상 보기 2시간, 수학 하루 3장, tv 없이 책 보기, 매주 도서관 가기.. 감사하게도 아이 둘은 잘 따라와 주었다. 주말 나들이라도 갔다 오면 그날 저녁은 그냥 쉬고 tv 보자고 하고 싶지만 졸려서 눈 감기는 아이를 데려다가 앉혀놓고 영어책을 들이밀었다.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사실 엄마인 내가 제일 힘든 싸움을 하고 이겨냈던 순간들이었다.


이렇게 나만의 싸움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터에서 찾지 못했던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 존재감 등을 채우기 위해 나의 본업인 주부이자 육아에 열정을 쏟고 전념해 왔던 것 같다. (정확히는 본업을 육아로 선택했다.) 매일 아이들 저녁 식단 사진을 신랑한테 보낸 지 십 년째이다. ‘오늘도 잘해 먹였어’라고 보내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면에는 나의 존재감에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족의 건강한 식단을 책임지는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가끔 자존감이 흔들릴 때 식단 사진을 꺼내보는 내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다.


//선생님 강사일지 왜 이렇게 쓰셨죠? 다음 달 용지가 없으면 달라고 하셨으면 될 텐데요//

//네... 교감선생님 바쁘실 거 같아서요. 제가 알아서 한다고 한 게 더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네요. 다음 달 일지 주시면 다시 써볼게요//

그리고 카톡으로 강사일지 용지가 날라 왔다. 직접 뽑아서 쓰라는 거였다. 오래 일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교감 선생님, 이 강사일지는 학교 측에서 직접 뽑아 주시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이건 학교에서 할 일인 것 같아서요//

교감 선생님과 더 많은 카톡 대화가 있었다. 그런데 핵심은 내가 할 말을 했다는 것이고 대쪽같이 큰소리해 놓고는 밤잠을 설치고 일주일을 끙끙댔다는 것이다.


신랑과의 대화에서 이른바 갑질 논란이 시작되었다. 신랑은 사회생활 안 해봐서 그렇다.. 회사에서는 알아서 다 뽑아서 한다.. 나는 학교 할 일과 내 할 일은 따로 있다... 나는 갑질을 당한 거다..


일주일을 끙끙대고 나서 나름 내린 결과는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규직이 아닌 시간 강사라는 낮은 자존감, 머물 공간이 없는 자리가 만들어준 열등감 등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강사 일지는 내가 뽑을 수 있다.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에게는 뭔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다. 자존심에 타협하고 싶지 않다.


‘나는 40대 시간강사이다. 경력도 있고 연륜도 있을 터인데 강사 일지 준비는 학교 할 일이라는 것쯤은 안다!’

가끔씩 슬며시 고개를 드는 나쁜 자아가 있다.

‘돈 얼마 받는다고 그렇게 준비를 해 적당히 해. 일개 시간강사가 그렇게 까지.. 아무도 안 알아줘!!’

그렇다고 열등감에 사명감이 밀리고 싶진 않다.

‘나도 이곳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 전용 자리가 있든 없든 아이들에게는 같은 선생님이다. 매 수업 책임이 있고 교과목을 잘 습득하게 도와주면 된다!’


교감선생님을 피해 내내 숨바꼭질을 하다 집에 와서 지쳐 앉아있는데 하교한 둘째 아이가 막 뛰어 들어오면서 가방을 급히 연다. 시험을 잘 본 모양이다. 오늘도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이민다. 우리는 둘이 손 붙잡고 방방 뛴다. 5학년, 아직 한 번도 백점을 놓친 적 없는 신통방통한 둘째 딸아이다. 사르르 가신다. 엄마가 마음고생하고 아픈 거 알았는지 딸아이가 만병통치약으로 한방에 낫게 해 준다.


보따리상 이면 어떠한가.. 그래 괜찮다. 나는 두 아이라는 귀한 보물을 지고 가는 보따리 만물상이다. 길을 비켜라~~~

keyword
이전 06화단짝 윤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