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온도 차이

by 중랑천

한가로운 주말 오후.. 우리 부부는 기찻길 옆 커피숍에 앉아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오고 친구들과 주말을 보내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카페에서 남편은 거의 핸드폰을 보고 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기차가 다섯 대 정도 지나가는 걸 의식 없이 보고 있다가 남편 얼굴을 한번 쳐다본다. 난 일주일치 이야기보따리를 풀러야 하는데 남편은 보따리는 관심도 없고. 작은 핸드폰 괴물 하고만 사투를 벌이고 있다. 기차는 심심한 내 마음도 몰라주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속 바쁘다. 요즈음 우리의 시선은 각자 다르다.


남편과는 연애와 결혼까지 올해로 18년째 만나고 있다. 설렘? 그런 것은 없다. 그런데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의 포커스는 아직도 남편이다. 나는 18년째 남편에게 집중하고 있다.

오늘도 남편을 위해 콜라겐을 먹는다. ‘나를 위해’라고 이야기하면 차라리 안 부끄럽겠는데 ‘남편을 위해’ 내가 먹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싶지만 사실이다. 내가 나를 볼 때 남편의 시선으로 나를 본다. 탱탱하고 생기 있는 젊은 그 시절 그때를 보고 싶을 것이다..

남편을 생각하며 머리를 빗고 로션을 바른다.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면 두 경쟁자를 제치고 뛰어가서 두발을 그의 허리춤까지 올려 폴짝 안긴다. (두 경쟁자는 초5 막내딸과 1살 된 강아지 ‘빵지’이다) 가끔 밀릴 때가 있는데 내 몰골을 거울로 확인하고 그를 마주하고 싶은 날, 거울 보다가... 늦게 마중한다.

나도 안다. 숨 막히다는 거. 숨 막힐 거라는 거 안다. 엄마들하고 브런치를 하면서 중년이 된 이 나이쯤 되면 관심사들이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저 늦게 들어오면, 출장 가면, 덜 보면 반갑고 좋은 인간이라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남편 관련 화제를 주머니 속에 꼭꼭 넣어놓고 꺼내지 않았다.

내 남편은 그 브런치 엄마들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거 같다. 눈빛, 말투, 행동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다. 참 이 부분이 속상한 점이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같은 마음으로 흘러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한 사람은 뜨거운데 상대편은 뜻뜨 미지근하다.

잉꼬부부, 손잡고 걷는 80대 노부부.. 이런 걸 상상했었나 보다. 누구나 연애하고 결혼의 확신을 얻을 시기쯤에는 평생 잉꼬부부의 꿈을 꾸지 않았겠는가. 나 역시 그런 꿈을 꾸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하는 생각들이 있다. 남편에 대한 관심 줄이기 위한 노력! 남편의 단점 찾기이다!

첫 번째, 방귀쟁이이다. 방귀도 아주 뽕~아니고 뿌웅 시원하게 뀐다. ‘어디서 저런 게 비집고 나올 수가 있지, 아랫집에서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도 아주 우렁차고 힘 있다. 엊그저께는 새벽녘에 우렁찬 방귀를 9번 연달아 껴서 나를 단잠에서 깨웠다. 3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다음 횟수부터는 숫자를 세느라 잠에서 깼다. 그리고는 나오면서 “실례했습니다”라고 하면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저 언어 센스 봐라.. 단잠을 깨워도 용서가 되었다.

두 번째. 깨끗하게 안 씻는다. 소변을 보고는 수도꼭지 여는 소리는 들리는데 딱 3초이다. 물을 묻힐 뿐 씻지는 않는다. 목욕도 물로만 뿌리고 나와서 몸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가끔 비누칠했는지 검사를 하는데 겨드랑이, 등, 목뒤.. 어디에서도 비누 향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남편은 악취가 없다. 물만 40년을 뿌렸는데 몸에 쌓인 악취가 없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얼굴에 비누와 로션을 안 쓰니 피부결도 푸석할만한데 모공은 넓지만 깨끗하고 탄력도 좋다. 참 아이러니 하다. 건강은 타고났나 보다 싶다.

세 번째. 노래를 못 부른다. 예전에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을 딱히 만나본 적이 없었다. 음대를 나온 나로서는 주변 남사친 들며 여자 친구들이 노래들을 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세상에 이렇게 안 될 수도 있구나.. 음정이 안 맞고 박이 다 조금씩 밀리네.. 많이 놀랬고 신기하기도 했다. 연애할 적 그 음치 박치의 기술로 무슨 자신감인지 노래방을 가면 전화를 걸어 귀에 불러주었다. 또 어느 날은 녹음을 해서 녹음파일을 보내주는 바람에 그걸 무한 반복해서 듣다가 가족들에게 들켜 음치 가수 남자 친구로 한동안 불리어졌다. 지금도 운전대를 돌리며 흥얼대다가 필 꽂히면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심히도 부르는 그는 가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내 단점은 성격파탄, 감정기복 심함, 무기력.. 이런 것들인데 남편의 단점은 다 귀엽다. 참 이상하다.

오늘도 내가 진 것 같다. 결국 남편의 단점은 귀여웠다. 조금 남은 나의 자존심을 위해 남편의 단점 찾기는 계속될 것이다. 기차는 여전히 바쁘다. 우리 남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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