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금은 집 나가려던 여자도 돌아오게 한다

by 중랑천

결혼 후 맞은 십 주년 결혼기념일 그해 3월..그냥 조용히 지나갔다. 흔한 케익도 자르지 않았다. 그 시기 우리부부는 가라앉을 것만 같은 위태로운 오리배를 타고 균형을 잡기위해 연신 발을 젖고 있었다. 혹시 뒤뚱거리다 가라앉기라도 하게 되면 그때는 각자 다른 배를 타야하는 상황이었다,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 생각했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았고 우리의 경제 갈등이 시댁하고도 엮이게 되었고 고부갈등과 맞물려 부부갈등이 시작되었다.

‘나를 키워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부모님 본인들 돈을 첫째에 다 주던 나눠 주던 부모님 마음이다. 편애 또한 어쩔 수 없는 거다. 더 예쁜 손주가 있고 아닌 손주가 있다. 그런거 기대하지 말자’ 결국 내 남편이 아니고 어머님의 아들이었다. 내편은 없었다. 우리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가슴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온 가족들은 돈으로 대답한다.

십년쯤 되니 신랑이 예전 같지 않게 느껴졌다. 부부는 우정으로 산다는 그 눈빛, 중년 남자의 긴장감 없는 반 풀린 눈빛으로 나를 볼 때 생기 있지 않았다. 아직도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나는 그게 매사 불만이었고 자주 싸우게 되었다. 이쯤 되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이 찢어지지만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끝냈다. 나는 구체적으로 일탈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몇 달에 걸쳐 통장을 정리했고 12월의 겨울, 동생네한테 빈방을 쓸 수 있는지 허락을 맡은 상태였다. 차마 친정으로는 갈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었다. 둘째 딸아이가 무언가 하나를 들고 나에게 뛰어왔다. 쇼핑백과 포장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빨리 열어봐 빨리”

반짝이는 것 좋아하는 여자아이라 본인도 반짝거리는 뭔가가 들어 있을 거라고 직감했는지 들떠 있었다. 나는 살짝 뜸을 들였다. 이걸 열면 혹시 오랫동안 다짐했던 결정에 번복이라도 하게 될까 걱정이 됐다. 드디어 일탈을 실전에 옮길 때가 다가왔는데 말이다.

빨간색의 정갈한 리본끈을 풀고 고급스럽게 입혀논 포장지를 조심스레 뜯어 묵직한 케이스를 열어보니 ‘반짝’ 빛이 새어 나온다. 스마일 모양의 목걸이가 웃고 있다. 몇 년 전 신랑이랑 명동에서 악세사리 보세점들을 구경하다가 “이런 스마일 모양이 많이 보이네. 참 이쁘다” 라며 내가 지나가는 말로 했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신랑이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있었나보다. 그 스마일 모양이 알고 보니 티파니 브랜드 목걸이의 이미테이션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목걸이를 식구들이 잠든 새벽에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차볼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예뻤다. 예쁘기도 했지만 순간 여러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 날 새벽, 수없이 내려놨다 목에 채우기를 반복했다.

‘이 목걸이 하나에 무너진다고?’

무너졌다. 사실 새벽에 눈이 떠지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나만의 일탈은 그날 새볔 새벽녘에 묻혀졌다. 얌전히.. 비밀스럽게..

목걸이를 주면서 한마디를 날린 신랑의 대사가 진짜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부인 선물 사주려고 내 용돈에서 조금씩 모아서 산거야”

신랑에게는 매달 용돈을 40만원씩 준다. 아이를 좀 끼고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일을 쉬고 외벌이가 되었다. 40만원씩 주면서도 5만원을 깎아도 되는데..라고도 생각을 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백만원이 훌쩍 넘는 목걸이였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교통비와 점심 값으로도 빠듯할 텐데 어떻게 큰돈을 모았을까..

신랑은 가끔 도시락을 싸가고 출퇴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매달 조금씩 모았다고 했다. 목표물을 선물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했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고 이미 가슴에 쌓인 속상함은 사라져버렸다. 오랜 시간동안 힘들게 돈 모으면서 본인 것 사고 싶단 생각은 안했을까.. 백화점까지 가서 어떤 마음으로 목걸이를 골랐을까.. 혹시 그동안 반 풀린 눈빛이 끼니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픔이었을까.. 자전거타고 출퇴근해서 생긴 노곤함이었을까..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이해하고 싶어졌다. 목걸이를 하고 싶어서였을까, 가정을 지키고 싶어서였을까..나만의 방법으로 짜 맞추고 있었다.

신랑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는 나는 사랑과 애정도 아직 밀당하는 연인인 것처럼 안달복달 했다. 하지만 신랑은 느리고 어수룩하지만 깊고 묵직하고 또 변함없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서사를 담은 목걸이는 지금 항상 나와 함께한다. 가끔 목걸이를 빼는 날이 있는데 그때마다 신랑은 빨간 신호를 눈치 채고 보듬어준다. 또 목걸이 덕분으로 동생과 제부에게 낯짝 불편할 뻔 했던 상황을 모면했다. 그리고 서사가 담긴 그 목걸이는 우리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게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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