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도 안 괜찮은 그런 밤

그러니까..난 안 괜찮다고

by 채현

힘들고 지치는 대학 생활은 시카고라는 대도시에서 이어져나갔다. 세계 랭킹 탑 10 안에 드는 예술학교, 누구나 부러워하는 학교의 학생이였지만 나는 그런 수식어조차 불필요한 장신구처럼 너무나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모든 것을 그저 그만두고 리셋시켜버리고 싶었다.

눈을 뜨면 아침이 밝아왔고, 아침이 밝아오면 수업을 가야하는 현실이 내 몸을 물 먹은 솜처럼 느끼게 할 정도로 무거운 현실이였다. 왜냐고?


고등학교때까지는 그림 잘그리는 아이,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아이 였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는 나는 그저 엑스트라 1, 지나가는 행인 1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뿐이였으며 더 이상 나에 대한 인정도 쉽사리 받을 수가 없었을뿐더러 크리틱, 즉 같은 반 아이들끼리 "작품을 평가한다" 라는 명목으로 "폄하" 할 적에는 나의 작품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밟혀버릴 뿐이였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는 그저 돈은 많지만 재능은 없는, 돈으로 입학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어린 아시아인 유학생일 뿐이였고, 동등한 실력을 갖춘 유학생으로 간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는 사실인가.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오면 먹을게 없었다. 아, 물론..학식이라는 볼품없는 음식들은 학교에서 학비로 제공해주었지만 퍽퍽한 연어스시와 되도 않는 차가운 냉동 샌프란시스코 롤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냉장고를 열면 과일부터 부모님이 사다준 고급 초콜릿이 있는 룸메이트들과는 다르게 나의 선반에는 hmart 에서 사온 자그마한 불닭볶음면 컵라면 두어개 밖에 없었고, 맵디 매운 라면이 나의 속을 긁어버리는것은 어느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나의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며, 이는 나의 정신조차 갉아먹어버리고 말았다.


그치만, 나는 이 모든 고충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너무나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나의 이러한 처지에서 생겨나는 고충들은 그저 복에 겨운 소리라는 이상한, 터무니 없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걸었고, 나는 절대로 부모님께 이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고" , "바빠서 연락을 잘 못할 것이다" 라는 말로 회피를 해버렸으며 그들과의 연락은 서운함을 뒤로 한채 점점 간결해지고 결국에는 사라져갔다.


그렇게 의지할 가족들과의 연락이 뜸해질 무렵, 학교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 한통이 왔다.

바로, 학교 심리상담 센터. 이들이 나를 어떻게 알았고, 아니 왜 그 수많은 학생들 중 나를 콕 집어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지만 굳이 나는 그것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그 이메일이 어쩌면 나를 살린 구원이였기에.

이메일의 내용은 짧지만 다정하였고, 간략하지만 많은 것을 담았었다. 바로, 한번 무료로 심리상담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대면으로 만나는 것이 힘들면 줌으로라도 미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그 이메일에 줌 미팅의 약속을 잡는 것으로 응답을 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미팅 첫 날. 어설픈 맨투맨과 츄리닝, 질끈 머리를 묶은 내 앞에 화면 속 환한 미소를 띄운 30대 중반의 백인 여성이 손을 흔들며 나타났고, 나는 그 분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그 분은 내가 왜 우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이 들고 서러웠는지 에 대한 의문을 전혀 표출하지 않았고 나는 그저 한참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여전히 괜찮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저 한편으로는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지칠대로 지친 어린 소녀로 봐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여전히 내 선반에는 초라한 불닭볶음면만이 있었고 나는 핍박과 차별에 허덕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 작은 화면 속에는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다시 한번 숨을 쉬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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