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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Aug 21. 2024

‘엄마는 위대하다.’

상주에서 만난 사람들 (1)

내가 참가한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귀촌형’인지라 실제 농사짓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먼저 귀농귀촌한 분들의 집이나 일터 및 사무실 등을 찾아가 그들이 귀농귀촌을 하게 된 사연과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현재의 일상과 앞으로의 계획 및 선배로서의 조언 등을 들어보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두 달 동안 여러 분들을 만났는데 단순히 귀농귀촌을 통해 개인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을 넘어서 깊은 내공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 환경과 먹거리 등 각종 사회문제들을 일상 속에서 개선하려 노력하며 지극히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생겼다. 무엇이 이런 분들을 상주라는 곳으로 이끌었을까? 물론 연고가 있거나 도시살이 후 고향인 상주로 돌아오는 분들도 있지만 나처럼 큰 인연 없이 이곳에 오신 분들이 많았기에 무언가 보이지 않은 끌림이 상주에 있는 게 아닌 가 싶었다.      


하루는 사무국장님이 테마여행을 기획 중이라며 명칭이 ‘상주삼백’이라 했다. 처음에 당연히 삼백의 고장 상주의 쌀, 곶감, 명주를 주제로 여행을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더 들어보니 상주의 명소들을 방문하고 스토리를 가진 300명의 상주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여행이라 한다.     


두 달 살이를 하는 동안 만나 본 여러 분들의 살아온 이야기들과 이어지는 일상, 그들이 지향하는 삶에 비추어 볼 때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테마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글에는 그 300명 중 한 분이 아닌가 짐작되고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아녜스(세례명)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귀농귀촌을 한 이유에 대해 들어보면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농사를 업으로 삼으려, 도시생활에 지쳐 한적한 시골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외에 본인이나 가족의 치유를 위해서 시골로 향하는 경우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녜스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그녀가 결혼 후 평범한 공무원생활을 18년째 해 오던 중 5살이던 둘째 아이가 혈액암에 걸렸다. 당시에는 희귀병이라 직장 내에서 모금운동까지 하였다는데, 아이는 치료를 위해 10개월 동안 암병동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아이가 퇴원을 한 후, 아녜스는 아이 치유를 위해 귀촌을 결심했으나 처음에는 남편과 첫째 아이가 지지를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공기 맑고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 회복에 도움일 될 것이라는 생각과 직접 재배한 싱싱한 식재료로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해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시골 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유기농 자연식은 물론 아이 몸에 좋다면 고라니, 너구리 고기를 잡아서 먹이기도 하는 등 오직 아이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다했다. 학교급식 등을 먹이지 않기 위해 고3 야간학습까지도 도시락을 싸서 직접 가져다주며 먹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이가 완쾌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 2년만 더 다니면 연금도 받을 수 있는 공무원생활도 망설임 없이 그만두었다. 어릴 적 가난한 시절을 견디고 이루어 낸 자부심 있는 공무원으로서 삶도 포기하고, 자신을 위해 꿈꾸던 것들도 모두 접어두고 오직 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녀의 헌신으로 그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해서 33세의 성인이 되었고 교장으로 정년퇴임 한 아버지와 같이 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아녜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참 위대하다.’   


엄마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미션을 성공한 그녀는 이제 나눔과 봉사를 통해 또 다른 그녀만의 미션을 수행하며 살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지만 독특하게도 그녀가 추구하는 삶에서는 본인이 가진 종교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종교로부터 배울 점 등을 취해 자신에 맞게 체화해서 살고 있다. 


삶의 원칙과 관련해서는 법륜스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위한 삶은 이기적이고 타인을 위한 삶은 거룩한 삶’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 주위의 여러 분들로부터 듣기로 그녀가 아낌없는 나눔 등을 통해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개신교 임락경 목사님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자연치유건강교실’에서 봉사자로 활동하며 본인의 아이를 자연식으로 치유시켰듯이 올바른 먹거리를 통한 질병의 치료 등을 전파하는 데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아녜스 댁에 방문한 이후에도 그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만남을 위해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하고 싶었으나 유기농자연식을 하시는 분이라 식당과 메뉴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대신 차를 한 잔 하기를 청했다. 혼자 나오시면 쑥스러우실 듯 해 그녀를 대모라 부르는 바울라(세례명)와 함께 오시라 했다.   


바울라는 아녜스 댁에 방문을 했던 날 함께 자리를 했었는데 그녀는 아녜스가 큰 교통사고로 5개월 동안 구미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상주에서 거의 매일 구미까지 당근죽 등 건강식을 챙겨가서 빠른 회복을 돕는 등 실제모녀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이다.      


그렇게 상주시내 찻집에 마주 앉아 지난번 만남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도 나누고, 된장, 간장 등 발효식품의 효과, 녹두죽, 당근죽 등 건강한 자연식 만드는 방법 등을 들었다. 감사하게도 집사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물에 타서 마시게 하라며 유기농 된장 한 병을 선물로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며 모전여전이랄까 바울라의 살아가는 방식도 아녜스만큼 배울게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만남 내내 이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아녜스의 제자가, 바울라(나와 동갑)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혹 결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며칠 후, 이른 아침에 아녜스가 녹두죽을 끓였다고 먹으러 오라고 연락을 주셨다. 녹두는 해독작용에 좋아 가족이 아프거나 여행 등에서 돌아오면 꼭 해 먹인다고 말씀하셨었는데, 내게도 귀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아녜스는 지금 20년 전 아파트처럼 편리한 구조로 꾸민 2층 시골집에서 넓은 텃밭에 과일나무며 온갖 채소 등을 기르며 본인이 살고 싶어 했던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충분히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그녀가 매일매일의 일상이 행복하다 하니 듣는 나도 행복해졌다. 


내게 언제나 생각나면 들르고, 연락 없이도 아무 때나 와서 텃밭에 과일, 채소도 따가라 하신다. 앞으로 내가 상주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상주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이다. 그녀가 오래도록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며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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