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서 만난 사람들 (3)
공자는 논어에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현실에 적용하고,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고 있다.
살아오며 늘 마음속에 새겨놓았던 격언이나 부끄럽게도 돌아보면 이런저런 얄팍한 이유들로 알면서도 실행하는 것에는 인색했었다. 좋은 학벌을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 교육문제를 알면서도 방과 후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시간을 주지 않고 원치 않는 학원으로 밀어 넣고,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일회용품 사용 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등 아는 것과 실천은 그저 별개였다.
개인이 마주하는 작은 일들도 실천을 잘 못하는 게 현실인데, 이번 상주에서 두 달 동안 머무는 동안 교육, 환경 및 바른 먹거리 등 변화가 필요한 분야에 있어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신념과 원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먼저 내게 큰 감동을 준 사람은 상주의 마을 예술가(마예가) 설립자이자 운영자인 C이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 돌봄과 교육 기회 제공 등 현 사회시스템의 부족한 부분들을 작은 힘으로 하나씩 채워 나가며 헌신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가는 것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 교육문제인데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 환경으로 아이들이 재능이나 적성을 발견하거나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그녀는 2000년에 귀농해 10여 년 농사를 지으며 농촌지역의 교육여건은 도시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도시처럼 방과 후 아이들이 갈 곳도. 할 것도 마땅치 않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먹고, 더 나아가 좋아하는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에 좋지 않은 경제 형편에도 불구하고 자비로 마예가를 열었다. 그리고 방과 후 농사일 등으로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 저녁먹이기를 하고 도시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각종 문화활동과 교육 등을 해왔다.
누구의 지원도 없이 품삯일 등을 해서 번 돈으로 시설 운영, 아이들의 먹거리, 볼거리 및 놀 거리 등을 마련해 마예가를 운영해 왔는데 본인의 아이들을 포함해서 아이들이 많았던 시기에는 30여 명, 지금은 17명 정도를 돌보고 있다.
2020년부터 활동이 알려져 상주시와 교육청으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마실’이라는 마을학교 중 하나로서 외서 마을학교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름으로 마예가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마예가를 거쳐 간 아이들을 바르게 성장을 해서 선배로서 인사를 하러 찾아올 때라고 한다. 앞으로도 돌봄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음악, 그림, 목공, 독서, 음식, 정원 가꾸기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가냘프지만 강단이 느껴졌다.
다음으로 소개할 사람들은 농촌의 환경과 바른 먹거리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로 감농사, 배농사 등을 짓는 L과, 벼농사, 토마토 및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K, L 부부의 이야기다. 그들은 모두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꿈꾸며 상주로 귀농을 했다.
농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 등의 사용으로 인해 환경파괴와 농산물의 잔류농약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 등 환경보전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염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귀농을 하면서 뜻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꿈이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농사 자체도 쉽지 않은 데다가 경제성이 없는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지어서 살아가는 건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친환경, 유기농으로 이런저런 작물들을 재배하다 실패를 하고 결국 농사를 접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상품성 있는 농산물의 수확 등을 위해 농약,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게 되고 마는 경우들을 많다.
귀농 17년 차인 L의 경우, 유기농으로 감을 키우니 수확량이 오분의 일 밖에 되지 않아 직거래 곶감 주문을 받아도 공급을 못하는 해가 많았다고 한다. 농사 재료비 값도 나오지 않아 품삯 일이나 막노동으로 수입을 보충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귀농 11년 차인 K, L 부부의 경우, 논 26마지기를 임차해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고 토마토, 파프리카 등을 유기농으로 키우고 있는데 수익을 내기 어렵다 한다. 실제 토마토, 파프리카 온실에 가보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탓에 토마토 등이 상품으로 제 모양을 갖춘 것이 많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귀농을 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친환경, 유기농 농사의 꿈을 접지 않고 있다. 농약, 화학비료 등 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건강하지 못한 먹거리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밀알들은 보잘것없으나, 가을이 되면 그 씨앗들이 수십수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상주에 마예가라는 밀알이 뿌려져 현재 7개의 마을학교 ‘마실’로 열매로 맺어 돌봄, 방과 후 활동, 각종 교육 문화 프로그램 등 공교육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청소년을 위한 쉼터 및 문화센터인 ‘모디’가 탄생하게 된 것도 마예가의 활동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이 든다.
아울러 L과 K, L 부부처럼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착한 농부들의 노력과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의 요구가 맞물려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의 활발한 직거래는 물론 지역 농산물 직판점 ‘상주 생각’, 온라인 판매를 하는 ‘언니네 텃밭’ 등을 통한 판매가 늘어나는 등 선순환의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다
이들 외에도 반디랑 자연학교를 운영하며 산, 들, 냇가 등 자연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 자 숲해설가인 J, 몸에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유기농 캐모마일을 재배하는 윤 찻집, 재료비가 50%가 넘어도 유기농 재료만을 고집하는 피자집 살롱드봉강(동네 한 바퀴에 소개) 등 많은 사람들이 상주라는 곳에서 희망의 밀알을 뿌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이제 상주는 ‘귀농귀촌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3년 귀농귀촌 통계’에 상주가 22년에 이어서 2년 연속 귀농인 수 전국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노력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크고 작은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은 누군가,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살고 싶은 농촌은 누군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해서 묵묵히 노력하는 저들처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2달 동안 내게도 그동안 나눔 등을 위해 배워두었던 집수리, 전기 및 요리 등을 실천할 수 있었지만 준비된 프로그램 일정만 따르는 수동적인 시간들만 보내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귀촌을 하면 생각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좀 더 능동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실행할 것을 다짐해 본다.
끝으로 오늘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며 '尙州'를 인심, 따뜻함 및 희망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르는 살고 싶은 농촌, '常住'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무한 희생의 아이콘 마예가의 C와 귀농인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L과 K, L 부부 등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