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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Aug 28. 2024

‘승곡마을 촌(村) 카페는 요한의 작은 갤러리다.’

상주에서 만난 사람들 (2)

내가 두 달간 머물던 승곡체험마을 입구에는 ‘하늘 안 카페’라는 작은 촌(村) 카페가 있다. 그곳은 전직교사였던 수산나(세례명)가 운영을 하고 있는데 24시간 열려있지만 오후시간에만 그녀를 볼 수 있다.    

  

저녁시간 하늘 안 카페의 한가로운 외부 모습


수산나는 커피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생두를 직접 구입해 발효시켜 원두를 로스팅하는 과정(커피를 잘 몰라 듣고 기억나는 대로 옮김)까지 직접 한다는데 커피 맛을 본 사람들은 멀리서도 구입을 위해 주문을 한다고 했다.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단지 커피가 좋아서 배웠다는데 살고 있는 마을에 본인이 좋아하는 커피를 직접 만들어 여러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주어진 것은 행운이라 했다.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과정 중 하나로 수산나 부부로부터 '귀촌한 선배의 경험'을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 수산나가 남편인 화가 요한(세례명)과 상주에 오게 된 사연 등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요한은 16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세 번이나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는 동안 요한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고, 집안의 경제적인 사정도 나빠지고, 그만큼 수산나의 몸과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4년 전 지인을 찾아 상주에 왔을 때 요한은 말도 잘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큰 희망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심정으로 상주에 왔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지내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신선한 친환경 재료의 음식을 먹고, 텃밭에서 흙을 만지며 요한의 몸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걸음걸이는 좀 불편하나, 의사표현도 명확해지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더구나 다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림도 그리고 있다. 몇 년 전 구입한 작은 시골집에 요한의 작업실도 마련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투병 전에는 규모가 큰 유화작품들을 주로 그렸으나 요즘은 성당의 성화와 작은 크기의 꽃 그림 등을 주로 그리고 있다.      


수산나가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오랜 세월 남편을 돌보느라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라 한다. 다행히 아이들이 부모의 사정을 이해하고 잘 성장해 주었고 지금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반자 관계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고 있다 한다.     


16년간의 파란만장했던 사연을 담담히 들려주는 수산나의 표정은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녀가 감당하고 맞선 그 험한 세월을 어찌 가늠하랴 만은 잘 이겨내고 지금은 참 평온하며 행복해 보이고 본인도 행복하다 했다.    

       



이후에도 카페 등에서 여러 차례 수산나와 마주쳤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농촌 살아보기 참가자들이 바닷가에 다녀오다가 회를 떠서 숙소에서 먹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요한부부와 함께 먹자고 연락을 했다. 다행히 흔쾌히 수락을 해서 카페에서 함께 만찬을 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날 요한은 컨디션과 기분이 좋았는지 와인 등 술을 몇 잔 했고, 수산나도 평소 마시지 못한다는 술을 한잔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술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늘 단단해 보이던 수산나가 긴장의 끈을 살짝 풀어놓고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요한의 오랜 투병 기간 동안 그저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희망과 달리 진전이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이곳에 와서 좋은 환경, 좋은 사람들 만나서 요한의 몸 상태가 좋아졌고, 또 마을에서 배려를 해 주어 카페도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했다.     


늘 긴장 속에 살며 잠결에 요한이 기침만 해도 가슴이 내려앉는 날들을 보냈는데 이제 상태가 좀 좋아진 요한 걱정은 접어두고 그동안 피폐해진 자신을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늦잠도 자고 정신적으로도 자신을 돌보며 살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수산나의 시선은 주기적으로 요한의 안위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 한 편이 짠했다. 하루빨리 요한의 건강이 더 좋아져서 수산나가 온전히 자신만을 살피고 돌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촌카페에는 요한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최근 작품들의 경우, 몸 상태가 아직 정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표현이나 붓의 터치 등은 그림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것들이라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전에 그린 요한의 그림들은 규모가 커서 일반인이 소장하기 쉽지 않았으나 요즘 작품 중 일부는 작은 액자 크기라 누구나 구매해서 소장할 수 있을 듯하다. 카페에 전시된 요한의 작품은 판매도 되는데 카페를 방문한 사람들은 커피도 마시고 좋은 작품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구매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마치는 날 카페에 갈 때마다 유심히 보아두었던 작품 하나를 구매했다. 원래 계획하지 않은 소비는 잘하지 않는 편인 데다 평소 그림 등에 관심도 없었지만 혹 요한 부부에게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구매를 했는데 의도와는 달리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요한의 몸 상태로 작품하나를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써야 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에 그림가격을 물어보는 것조차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고작 30만 원(물론 개인적으로 적은 돈은 아니지만..)이라는 돈으로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구입하는 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가격을 지불했으나 뭔가 제 값을 치르지 않은 것처럼 찜찜했다. 그러나 가격을 떠나 좋은 의도로 구매한 것만 생각하고, 기회가 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요한의 작품을 소개하고, 또 다음에 좀 더 좋은 값으로 다른 작품을 구매할 수 있기를 바라며 미안한 마음을 접어두었다.      


그렇게 남다른 사연을 가진,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요한의 작품을 집에 가져와 가장 잘 보이는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라색 뫼꽃을 그린 작품은 명화라 생각해서 그런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온 집 안 분위기를 화사하게 빛내 주고 있다.    

           

집 거실에 놓은 화가 윤기원(요한)의 24년작 '뫼꽃'


앞으로 요한과 수산나의 삶도 화사하게 반짝반짝 빛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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