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우리 동네 블록 안에 몇 층짜리 건물 전체를 다 쓰는 큰 요양 병원이 생겼다.
요양 병원 타이틀이 붙어있으니 어르신들만 갈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과, 그래도 가까운데 병원이 생겼구나! 하는 반가움이 들었다.
동네에 병원 생긴 게 뭐 대수라고, 거기까진 아무 문제없었다.
진짜 문제는 요양 병원 건물과 나란히 붙어 있는 바로 옆 건물 1층의 호프집 이름이 '주마등'이었다는 거다.
주마등이야 그냥 등 아닌가, 단어 뜻 그대로 불을 붙여 어둠을 밝히는 등.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빨리빨리 지나간다는 의미로 비유하곤 하는 주마등.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도 더 빠르게 와닿는 게 그거 아닌가. 죽기 전에 본다는 그거.
뭔가 이상하고 불편했다.
나는 병원 관계자도, 호프집 관계자도 아니지만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동안 병원 근처를 지나다닐 때마다 저래도 되는 건가 혼자 마음 졸였다.
다행히 나만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니었는지 얼마 후에 호프집은 '해오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똑같은 세 글자 상호명인데 그 느낌은 완전히 반대다. 보기만 해도 희망이 샘솟고 기운이 넘친다.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어둑어둑했던 가게도 밝은 색으로 리모델링한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나처럼 어르신들만 갈 수 있는 병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선지 얼마 후 요양 병원은 한방 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결국 이전의 어색하고 머쓱했던 병원-호프집 상호명 조합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병원-호프집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블록 조각이 딱 맞아 조립되는 것처럼 속이 시원하고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