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조선 그리고 몰락
18세기 조선은 영조, 정조 집권기였고 국사는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정조의 자 순조가 19세기 시작과 함께 왕위에 올랐으나 외척세력과 힘을 겨루는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후 헌종, 철종은 두 외척세력의 권력다툼에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조정의 변화는 1863년 고종이 즉위하면서 시작됩니다. 외척세력들과 거리를 두며 절치부심했던 그의 부 이하응(흥선대원군)이 아들을 대신해 정권을 장악합니다.
이 즈음부터 조선은 왕권과 외척세력 사이의 권력다툼과는 비교가 안되는 격랑의 소용들이에 빠져듭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게 되는데 1871년 전국에 세운 척화비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고 이후 조선은 굴욕적인 조약들을 맺으며 갈길을 잃게 됩니다. 외교적 난망, 백성들의 원성, 지배층의 이권 다툼, 궁궐 내의 복잡한 관계(고종과 그의 비 민씨, 그리고 흥선대원군) 등 19세기 말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제국주의의 야욕을 물리치고 온전한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면 먼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역사는 돌고도는 것인데 약 150년 전의 상황이 낯설지 않습니다.
아악: 환구제례악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재위: 1864~1897년)은 조선의 주권을 강화하고 정국을 타계하기 위하여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황제국임을 천명하고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비 민씨는 명성황후가 됩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환구단(서울 시청역 부근 웨스틴조선호텔 뒤편)에서 유교식 제천례(건국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는데 이때 사용한 악장이 환구제례악입니다.
자료: 웨스틴 조선 서울 환구제례악은 대한제국(1897~1907년) 시기 매년 동지와 정월 상신(음력 1월 첫 번째 辛이 들어간 날)에 거행한 아악으로 총 8악장으로 구성됩니다. 아악기를 연주하는 악대는 등가와 궁가(헌가)이며 조선에서 거행된 사직제례악, 문묘제례악의 악대와 동일합니다.
등가: 당상에 설치된 악대, 천자를 상징, 음양의 양을 표현
궁가(헌가): 당하에 설치된 악대, 제후를 상징, 음양의 음을 표현
참고로 당하에 설치된 악대를 조선에서는 헌가라고 하였고 대한제국에서는 궁가라로 부릅니다. 신에게 제례(제사)를 지내는 순서는 조선시대의 여러 제례악의 순서에 준합니다.
중화지곡
신을 맞이하는 영신 절차에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궁가 악대가 연주합니다.
숙화지곡
신에게 전폐(폐물)을 바칠 때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등가 악대가 연주합니다.
응화지곡
진조(신에게 찬을 올리는 의식) 절차에서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궁가 악대가 연주합니다.
수화지곡
삼헌례 중 초헌(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절차에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등가 악대가 연주합니다.
예화지곡
삼헌례 중 아헌(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절차에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궁가 악대가 연주하며 무용수는 8일무(8행8열, 총 64명의 무용수)로 배치되어 문무를 연행합니다.
희화지곡
삼헌례 중 종헌(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절차에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궁가 악대가 연주하며 8일무로 문무를 연행합니다.
옹화지곡
철변두(제기와 음식을 거두는 의식) 절차에서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등가 악대가 연주합니다.
안화지곡
송신(신을 보내는 의식)과 망료(축문을 불사르는 의식) 절차에 사용된 제례악입니다.
궁가 악대가 연주합니다.
환구제례악은 조선의 사직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을 원형으로 하며 구성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열강 속에서 나아갈 길을 모색하려했던 고종의 의지가 반영된 아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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