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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의 괴물

1998년, 고시엔을 뒤흔든 에이스

by 야구소년

2025년 2월, '레이와의 괴물' 사사키 로키가 다저스에 합류해 첫 피칭을 했습니다. 구단과 팬들이 모두 기대하고 있는 사사키인지라 벌써부터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사키가 '괴물'인 것은 알겠으나 왜 그가 '레이와의 괴물'이라 불리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답을 하자면 '레이와'는 현재 일본의 연호입니다. 일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메이지'도 연호에 해당합니다.


일본의 연호는 천황 한 명당 하나의 연호를 사용하는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를 채택하여 천황이 바뀔 때마다 연호가 함께 바뀌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연호는 '레이와'로 2019년, 나루히토 천황이 즉위했을 때부터 사용되고 있습니다. 2019년은 사사키 로키가 오후나토 고교 3학년에 재학하던 시절로 당시 사사키는 163km라는 초고교급 공을 던지며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시대의, 앞으로 3-40년간은 더 이어질 시대의 괴물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사키 전에, 한 시대의 괴물이라 불린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사이토 유키, 다나카, 다르빗슈, 등의 선수들보다 앞서 고시엔에서 활약하며 고시엔을 상징하고 '헤이세이'를 대표한 '헤이세이의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이야기입니다.


1998년 봄, 괴물이 등장하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c.sponichi)

1998년 센바츠, 여느 때와 같이 많은 이들이 소년들의 야구를 보기 위해 고시엔에 모여들었습니다. 3월 28일, 대회 3일 차, 가나가와 현 대표팀 요코하마 고교와 효고 대표 호토쿠 학원의 경기. 요코하마 고교의 등번호 1번 에이스가 경기 시작부터 140km 후반대의 공을 뿌리자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2회, 에이스의 손을 떠난 공은 프로야구팀 스카우터의 스피드건에 150이란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스피드건이 정착한 1980년 이후 고시엔에서, 고교야구에서 150이 찍힌 것은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많은 스카우터들과 많은 야구팬들이 이 선수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 공은 '헤이세이의 괴물'을,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고시엔 데뷔를 알리는 공이었습니다. 마쓰자카는 이날 경기에서 9이닝 6피안타 2 실점 8 탈삼진을 잡아내며 호쾌한 시작을 했고 1972년 등장한 '쇼와의 괴물'과 같은 센바츠에서의 데뷔를 알렸습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c.닛칸 스포츠)

이어진 4월 3일 3회전에서도 13 탈삼진을 잡아내며 완봉승을 거두었고 준준결승에서도 5피안타 7 탈삼진으로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만난 PL 학원, 어릴 적 KK콤비(구와타 마스미&기요하라 카즈히로)를 보며 고시엔을 꿈꾼 마쓰자카였기에 PL을 상대한다는 것은 상당히 두근거리면서도 긴장되는 일이었습니다. PL과의 경기에서 마쓰자카는 센바츠에서의 첫 실점을 내주었지만 최소실점으로 틀어막으며 9이닝을 2 실점 5피안타 8 탈삼진으로 소화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진출한 결승전, 마쓰자카와 함께 초고교급 에이스로 평가받는 쿠보 야스토모가 이끄는 칸다이 다이이치를 상대로 다시 선발 등판해 9이닝을 4피안타 7 탈삼진 무실점으로, 3루까지 진루를 허용하지 않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마쓰자카의 센바츠에서의 성적은 5경기 45이닝 22피안타 2 실점 43 탈삼진 평균자책점 0.8. 그야말로 한 시대의 괴물이 태어난 순간이었습니다.


한 시대로 이어진 여름의 시작

마쓰자카 다이스케 (c.아사히 신문)

마쓰자카를 필두로 한 요코하마 고교는 봄에 이어 여름에도 고시엔을 밟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봄을 지배했던 마쓰자카가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하며 고시엔을 찾았습니다. 마쓰자카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1차전 야나기가우라와의 경기에서부터 9이닝 3피안타 9 탈삼진으로 1 실점 무자책으로 좋은 시작을 보였고 이어진 2차전 가고시마실업고와의 경기에서도 9이닝 5피안타 9 탈삼진 무실점, 3차전 세이료 전에서는 9이닝 4피안타 13 탈삼진으로 역시 완봉승을 거두며 준준결승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정녕 사람인 것입니까. 아직도 그가 마운드에 서있습니다.

요코하마와 PL의 준준결승 (c.number web)

준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센바츠 준결승에서 만났던 PL학원이었습니다. PL은 지난 센바츠가 당시 나카무라 준지 감독과의 마지막 경기였기에 아쉽게 패배한 은사와의 마지막 경기에 대한 리벤지를 눈앞에 둔 상태였습니다. 선취점은 PL이었습니다. 2회 말 희생플라이와 2루타로 3점을 내며 25이닝 연속 무실점의 괴물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4회 초, 코야마의 투런 홈런으로 경기는 한 점차로 좁혀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수비에서 PL 타선의 연타로 다시 한 점을 내주고 만 마쓰자카였습니다. 이어진 5회 초, 요코하마 타선의 연타와 적시타로 경기는 4-4 동점이 되었습니다. 7회 초, PL은 에이스 카미시게를 투입하며 길어질 수도 있는 경기를 확실히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 의지는 7회 말 볼넷과 안타로 한 점을 추가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뒤인 8회 초, 카토의 출루와 오야마의 안타로 다시 한번 경기의 균형을 맞춘 요코하마 고교였습니다. 그렇게 경기는 9회까지 균형을 이루었고 경기는 연장으로 향했습니다.


10회에도 양 팀은 점수를 내지 못하며 11회로 향했습니다. 11회 초, 마쓰자카가 직접 안타로 출루했고 시바의 적시타로 이 날 경기에서 처음으로 리드를 잡은 요코하마였습니다. 11회 말, 2 아웃 2루에 몰린 PL은 오니시의 적시타로 다시 한번 경기의 균형을 맞추며 경기를 12회로 끌고 갔습니다.


12회부터 15회까지 마쓰자카, 카미시케 두 투수의 열투는 계속해서 이닝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던 16회 초, 만루 찬스를 맞은 요코하마는 유격수 땅볼로 한 점을 추가해 승리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16회 말 공격에서 선두타자로 나선 다나카의 안타에 이어 와일드 피치가 이어지며 주자 3루, PL 역시 유격수 땅볼로 한 점을 추가, 다시 한번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기 종료 (c.닛칸 스포츠)

경기를 결정지은 것은 17회 초 2 아웃, 주자 1루의 상황에서 토키와의 투런 홈런이었습니다. 홈런에 앞서 장타를 아웃으로 바꿔낸 호수비가 있었던 PL이었기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요코하마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마쓰자카는 17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마운드에 선 19세 소년은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녕 사람인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공은 날카로웠습니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삼자 범퇴로 3시간 37분의 혈투 종료. 마쓰자카의 투구수는 250구. 17이닝 13피안타 7 실점 11 탈삼진으로 팀을 준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뼛속까지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 (c.full count)

17이닝을 완투한 마쓰자카는 다음날 준결승 경기에는 마운드에 오르지 않는다고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메이토쿠와의 준결승에서는 외야수로 선발출장한 마쓰자카였지만 팀은 7회까지 6대 0으로 끌려가며 봄-여름 연패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싶었습니다. 8회에 4점을 내며 추격했지만 여전히 점수차가 있는 상황. 8회 말 공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등번호 1번의 투수가 팔에 테이핑을 한 채 투구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마운드에 오른 마쓰자카는 전날 250구를 던진 투수로는 보이지 않는 묵직한 공으로 9회 초를 막아냈습니다. 그때 감독은 '정말 뼛속까지 에이스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9회 말 끝내기 승리로 요코하마와 마쓰자카는 봄-여름 연패를 향한 마지막 관문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헤이세이의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 (c.요미우리 신문)

결승전에서 마쓰자카는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상대팀은 교토 세이쇼 고교. 아직은 피로가 남아있던 마쓰자카였기에 최대한 힘을 보존하는 운영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1회 초, 선두타자의 강력한 타구가 땅볼로 이어지긴 했지만 이때 마쓰자카는 최대한 맞춰 잡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4회까지 이어졌던 투수전은 5회 말 마츠모토의 홈런으로 요코하마가 선제했습니다. 이후 다시 한 점을 추가해 스코어는 2대 0, 아직 마쓰자카는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우승! (c.아사히 신문)

마쓰자카는 8회 초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주며 첫 출루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후속타자를 잡아내며 더 이상의 출루를 막았고 고시엔의 많은 이들은 봄-여름 연패와 더불어 노히트 노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어 8회 말에 한 점을 추가한 요코하마는 9회 초 수비로 향했습니다. 맞춰 잡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던 마쓰자카는 9회에는 삼진을 잡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 마지막까지 힘을 짜냈고 마침내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꿈의 봄-여름 연패, 그리고 고시엔 사상 두 번째 노히트 노런의 투수가 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한, 또 일본의 마운드를 대표한 한 괴물의 등장, 그리고 시작점이었던 1998년의 봄과 여름이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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