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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2007년의 여름

by 야구소년 Feb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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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엔은 꿈의 무대임에 동시에 '기적'의 장소입니다. 고시엔의 무대에 서려면 지역예선에서 최소 5-6연승을 해야만 합니다. 지는 것도, 불운도 허락되지 않는 꿈의 무대. 고시엔은 운이 따라야만 하는, 기적이 함께해야만 하는 장소입니다.

고시엔고시엔

 "고시엔 구장에 기적은 살아있습니다!"란 캐스터의 수많은 멘트가 떠오를 정도로 고시엔의 본 무대에서도 기적은 늘 함께했습니다. 끝났다고만 생각했던 9회 말, 단숨에 점수를 뒤집기도 했고 부상으로 인해 밟지 못했을 뻔한 꿈의 무대를 밟은 경우도 있었고 모두가 경기를 포기했을 때 경기를 홈으로 날아와 경기를 끝내지 않은 흰 공의 비행도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100년이 넘는 고시엔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기적으로 통용되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고시엔은 사립학교에게만 열리는 무대는 아니지만 사립학교가 어느 정도 공립교보다는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원부터 사소한 것들까지 사립교가 조금은 유리한 상황이 이어져왔습니다. 그러나, 2007년 여름, 우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만화보다도 더 만화 같은 여름을 보았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가장 뜨겁고 아름다웠던 여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가현립 사가키타 고등학교사가현립 사가키타 고등학교

2007년 사가현의 사가키타고등학교는 개교 이래 두 번째로 고시엔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에서 고시엔 출전 경험이 있는 학교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향하게 된 고시엔이었기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유난히 주목을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공립교'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야구만을 위해 엘리트들이 모이는 A, B급 사립교와 달리 공립교의 경우 '야구 장학생'이란 제도가 없고 전용 운동장 또한 없으며 연습 시간도 사립교에 비해 적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사가키타의 경우 시험 일주일 전에는 훈련을 금지시키고 야간 훈련은 없었을 정도로 선수들이 야구보다는 본인의 학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이었기에 더욱 화제가 됐습니다.

모모자키 감독 c.ciencia.com모모자키 감독 c.ciencia.com

 감독은 야구를 좋아하는 국어 교사였던 모모자키 선생. 고교와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한 그는 2004년 사가키타에 교사로 부임한 이후 3년 만에 고시엔으로 향하는 쾌거를 보였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감독의 가르침과 다른 학교에 비해 더욱 열악한 환경, 그저 야구가 좋아 모인 소년들이 이뤄낸 쾌거였습니다.

사가키타 고교. c.野球コラム사가키타 고교. c.野球コラム

 고시엔으로 향한 사가키타는 대회 개막전이란 큰 경기에서 첫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는 고시엔 18회 출전의 후쿠이 상고. 아무도 사가키타가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사가키타의 선발 바바가 호투, 3회에 선취점을 따낸 뒤 계속해서 위기를 넘겼고 8회 초에 추가득점하며 2-0으로 꿈에 그리던 고시엔 첫 승을 대회 개막전에서, 강호교를 상대로 쟁취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주장이자 포수였던 이치마루 다이스케는 "1승만으로도 기적이고 2승째는 기대하지 않는다. “라 말하며 야구소년들에게 있어 이 결과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였는지 보였습니다.

바바. c. c.野球コラム바바. c. c.野球コラム

 이후 2차전, 사가키타는 우치야마다 상고를 만났습니다. 첫 회부터 2점을 선제하며 경기를 시작했으나 5회 말 4점을 내주며 리드를 빼앗겼고 6,7회에 연속 득점하며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습니다. 9회 말이 종료되었을 때의 점수는 4-4. 승부는 연장전으로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두 학교 모두 투수들의 호투로 점수를 내지 못했고 고시엔 역대 5번째 연장 15회 무승부 경기가 되며 경기는 재시합으로 향했습니다.

 

 이틀 뒤 치러진 2차전, 선취점을 내주었지만 바바와 쿠보의 계투는 단 1점 만을 허락하며 우치야마다 타선을 제압했고 12안타 9 득점으로 타선도 폭발하며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고시엔에서의 2승째이자 사가 현의 고시엔 통산 30번째 승을 기록하게 된 사기기타였습니다.


 하루를 쉬고 맞이한 3차전에선 군마의 마에바시 상고를 만났습니다. 3회 초에 홈런으로 2점을 내주었지만 3회 말 2점을 얻으며 동점을 만든 이후 3회와 4회에 추가 득점하면서 리드를 벌렸고 7회에 추가 득점을 올리며 3회전도 승리로 장식하게 된 사가키타 였습니다. 첫 출장에서 8강이라는 높은 무대로 향하게 된 사가 키타, 이때부터 많은 야구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마?"라는 말과 함께.

에이스 쿠보.  c.野球コラム에이스 쿠보.  c.野球コラム

 8강에서 사가키타는 동도쿄의 명문, 테이쿄를 만났습니다. 양 팀이 사력을 다한 경기. 4회까지 계속해서 점수를 주고받으며 3-3으로 경기가 이어졌습니다. 사가키타의 마운드에는 6회부터 공을 던진 쿠보, 경기를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근성 있는 투구를 보였습니다. 3-3인 상태로 경기는 연장전으로 향했습니다. 쿠보는 10회와 12회에 위기를 넘기는 등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3회 말, 바바자키의 끝내기 안타로 4강으로 여름의 가장 높은 곳까지 한 발짝을 남기게 된 사가키타였고 야구팬들은 계속해서 "설마?"를 반복했습니다.


 사가키타의 4강은 여러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무대임과 동시에 4강에서 사가키타를 제외한 3개의 팀은 모두 사립, 그리고 이전까지 고시엔 최고의 기적이라 불렸던 '기적의 백홈'의 주인공이었던 마츠야마 상고의 1996년으로부터 11년 만의 공립교의 4강 진출이었습니다. 그런 4강에서 사가 키타는 2회, 4회, 그리고 7회에 각각 한 점씩을 뽑으며 리드했고 고시엔에서 6경기째를 맞은 소년들은 더 이상 2승째를 바라지 않던 이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여름의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야구팬들의 "설마?"는 전국을 들썩였고 모든 야구팬들의 염원이 고시엔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꿈의 무대에서 많은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상대 또한 우승에 대한 염원을 가진, 히로시마의 최강자 코료였습니다. 특히 노무라 유스케-고바야시 세이지라는 황금 배터리를 보유한 코료였기에 한 경기를 더 하고 준준결승에서도 연장까지 향했던 사가키타가 승리할 확률은 적어 보였습니다.


 결승이 시작되자마자 2회에 선취점을 내주고 7회에 다시 2점을 내주며 사가키타는 4-0으로 끌려갔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8회 말, 사가키타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구원 등판한 쿠보가 1사에서 안타를 만들고 9번과 1번의 연속 출루로 1사 만루라는 찬스로 타선을 제압하던 노무라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낸 천금 같은 밀어내기 볼넷으로 고시엔의 전광판에 1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건 대회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이날은 침묵하고 있던 3루수 소에지마.

브런치 글 이미지 7

 1 볼 1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소에지마는 노무라의 슬라이더를 잡아당겼고 그 타구는 고시엔의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많은 야구팬들의 꿈을 실은 고시엔 역사상 첫 결승전 3점 차 역전 만루홈런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리드로 맞이한 9회 초, 에이스 쿠보가 위기를 맞았지만 무사 1루에서 번트를 병살로 만들어내며 위기를 탈출하고 타석에 들어선 노무라를 변화구로 삼진 처리하며 많은 야구팬들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저 야구를 좋아했던 소년들의 쾌진격. 그 여름, 고시엔에는 기적이 머물렀습니다.

삼진!! 사가키타고교가 고시엔에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캐스터 멘트

 많은 야구팬들의 꿈을 이룬, 100년이 넘는 고시엔에서 가장 큰 기적이 깃든 2007년의 여름이었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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