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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야구를 알려준 당신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날리는 고시엔의 아치

by 야구소년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은 현재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정상에 오른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은 기량이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쌓아온 커리어만큼은 단연 '월드 클래스'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손흥민의 월드 클래스 설을 부정하는 한 명의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그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입니다.

손웅정 감독 c.연합뉴스

손웅정 감독은 손흥민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엄하게 훈련에 임하게 하고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의 멘탈을 가지게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도 손흥민을 많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한편으로는 축구인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잘 보이기도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손흥민은 아버지가 있었기에, 또 그런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짜준 스케줄을 수행한 덕분에 자신이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손흥민이란 선수에게 있어 손웅정이란 인물은 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아버지'란 존재는 운동을 시작하는 아이들, 혹은 운동을 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저 역시 취미로 야구를 시작했을 때도,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와 아파트 뒷 공터에서 시작한 캐치볼이 제 가장 중요한 취미가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는 것까지 이어졌습니다.

2022 고시엔 cm c.아사히신문 유튜브

고시엔의 경기를 보다 보면 학교 스탠드에서 학생들과 함께 응원을 하는 학부모님들을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고시엔의 CM 영상은 '이번 여름에도 응원하고 싶은 네가 있어'란 제목으로 한 여고생이 고시엔에 출전한 선수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타격음과 함께 시간이 흐르고 그 선수는 옆에 남편으로, 여고생은 어머니의 모습이 되어 고시엔에 출전한 아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영상이 진행됩니다. 어쩌면 고시엔은 '가족'을 하나로 모을 수도 있는 장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러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신에게 추억으로 남은 아버지, 그리고 야구를 향해 아치를 쏘아 올린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2017년 세이신 우르술라

2017년 99회 고시엔, 미야자키 현 대표팀으로 고시엔에 출전한 세이신 우르슬라는 개교 이후 두 번째로 고시엔 무대를 밟았습니다. 1차전에서 사가현의 와세다 사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회 초에 선취점을 뽑아낸 이후 4회에 4 득점으로 분위기를 타며 최종 스코어 5-2로 1차전에서부터 대이변을 일으킨 세이신 우르슬라였는데요,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케세키 후미야도 4타수 1안타 1타점을 올렸습니다.

우케세키 후미야 c.마이니치 신문

우케세키 후미야는 2014년, 중학교 3학년 시절 규슈 대표팀에 선발된 경험이 있는 유망한 선수였습니다. 소속팀인 노베오카 보이즈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고교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는데요, 그러나 중학교에서의 시즌이 끝난 중학교 3학년 때의 가을, 그에게 아픔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투병 중 세상을 떠나신 것인데요. 부친은 그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야구를 계속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지키기 위해, 우케세키는 포기하지 않고 야구를 계속하여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고시엔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전에서부터 타점을 올리는 등 활약했습니다. 2차전에서 만난 팀은, 후쿠시마의 강호, 세이코 학원. 2회부터 3점을 내며 선취했지만 5회에 역전당한 이후 8회 말, 추가점을 내주며 9회 초, 5-3의 상황에서 마지막 공격에 돌입했습니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우케세키는 높은 변화구를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기는 추격의 솔로홈런을 쳐냈습니다. 경기는 5-4로 종료되며 우케세키의 마지막 여름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케세키 후미야 c.닛칸 스포츠

경기 종료 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께 "힘을 보태주셔서 고마워요."란 말을 전하며 분명 하늘에서 보고 계셨을, 힘을 보태주셨을 아버지께 감사를 전했습니다. 본가인 미야자키로 돌아와 아버지의 묘에 자신의 홈런볼과 고시엔의 흙을 두며 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홈런볼과 고시엔의 흙. c.네이버 블로그 hbas


2019년 간토이치

2019년 101회 고시엔, 세이료의 오쿠가와, 리세이샤의 이노우에 등 많은 스타 선수들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은 대회였습니다. 간토이치는 2016년 98회 대회 이후 3년 만에 고시엔 행 티켓을 거머쥐어 고시엔으로 복귀했는데요, 매번 동도쿄대회 결승전에서 패배해서인지 정말 오랜만의 귀환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간토이치에도 위의 선수들과 같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선수가 있었는데요, 바로 간토이치의 주포이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 히라이즈미 료마입니다.

히라이즈미 료마 c.스포니치

히라이즈미는 101회 고시엔 전까지 고교통산 36개의 홈런을 기록한 거포로 많은 스카우터들에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고시엔 대회를 앞둔 인터뷰에서 기자가 야구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엇이냐고 묻자 히라이즈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린이 야구단의 어린이vs부모님 이벤트 매치에서 아버지께 좌측으로 큰 홈런을 맞았던 기억이 있어요.

히라이즈미는 이에 더해 아버지와 같은 좌측으로의 홈런을 치고 싶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높이, 멀리, 아버지가 계신 하늘을 향해서 말입니다. 히라이즈미 료마의 아버지인 히라이즈미 카츠노리씨는 심근경색으로 료마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1년, 42세의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히라이즈미 료마의 야구 생활은 아버지 카츠노리 씨에게서 선물 받은 배트 한 자루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야구는 어쩌면 아버지 덕분에 시작되고 지속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영정과 함께. c.네이버 블로그 hbas

히라이즈미가 꿈의 무대에 섰을 때, 그의 어머니 타카코 씨는 카츠노리 씨의 영정과 함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2점을 뒤진 채로 시작된 3회 말, 히라이즈미는 팀의 4번 타자로서 타석에 들어서 3 볼 노스트라이크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들어온 직구, 히라이즈미는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쳐냈습니다. 중앙으로 높게 뜬 타구는 그대로 담장을 넘어 백스크린을 강타했고 이 홈런으로 팀은 단숨에 역전하여 최종 스코어 10-6으로 1차전을 돌파했습니다.

히라이즈미 료마 c.스포츠호치

이후 2연승으로 맞이한 준준결승, 상대팀은 오사카의 강호, 리세이샤였습니다. 도쿄의 거포 히라이즈미와 오사카의 거포 이노우에의 맞대결로 많은 주목을 모은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1회 초, 주자 1,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히라이즈미는 상대 에이스가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오는 직구를 그대로 잡아당겼습니다.

히라이즈미 료마 c.닛칸 스포츠

좌측으로 높게, 좌익수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높은 포물선의 홈런. 아버지가 치신 방향으로, 분명 아버지가 계실 방향으로 쳐낸 홈런이자 팀을 깨우는 4번의 한 방이었습니다. 히라이즈미는 3루를 돌며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선취득점에 성공해 낸 간토이치였지만 아쉽게도 7-6으로 역전패하며 여름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고시엔에서 히라이즈미가 쳐낸 2개의 홈런은 분명 그의 아버지께 닿았을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어제로 긴 설 연휴가 끝났습니다. 많은 가족과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항상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하는 저이지만 이번 글만큼은 '가족'을 주제로 고시엔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고시엔에는 사람이 있고 그 속에는 가족, 친구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꼭 고시엔에서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꿈의 무대에서, 각자의 고시엔에서 소중한 사람을, 가족을, 친구를 떠올리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리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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