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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고시엔이 있었기에

by 야구소년
조용해진 고시엔. c.nhk

2020년 제102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101회 대회의 흥행으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세이료의 우치야마와 츄쿄다이츄쿄의 타카하시 등 스타선수들의 고교 마지막 시즌으로 시작 전부터 많은 기대를 샀습니다. 그러나, 2020년의 고시엔은 조용했습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센바츠가 취소된 이후에 여름 대회까지 취소되며 뜨거운 꿈의 성지 위에서는 그 누구도 달리지 못했습니다. 고시엔이 취소된 것은 1945년 세계 2차 대전 때가 마지막이었을 정도로 일본 사회가 흔들려도 항상 소년들과 함께 빛났던 고시엔은 코로나19를 이유로 75년 만에 조용해졌습니다.

조용하게 치뤄진 교류전. c.동경신문

지역예선 종료 혹은 도중 취소된 고시엔. 전국대회는 취소되었지만 전국고교야구연맹(고야련)은 여름을 준비해 온 선수들을 위해 고시엔의 흙을 담아 각 학교에 보냈고 좋은 성적을 낸 학교들을 선정해 고시엔에서 교류전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공식 기록에도 남지 않는 ‘교류전’. 연습경기의 형식을 빌려 이기든 지든 마지막 경기가 되는 고시엔에서의 경기에서 지역예선을 우승한 팀들은 전력을 다해 경기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의 여름은 뜨겁게 타오르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시엔 취소 소식을 접한 선수들 c.버츄얼 고교야구

고시엔이 취소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의 중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고시엔만큼은’이라 생각했던 일본인들에게 고시엔의 취소는 코로나19의 위험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고 일본 사회가, 그리고 세계가 큰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고시엔이 취소된 것은 1945년 2차 세계 대전 이후 약 75년 만의 일이었기에 어쩌면 일본인들에게 고시엔의 취소는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가슴 아픈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고시엔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약 4년간 취소되었던 아픔이 있었기에 또다시 고시엔이 잠정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야구팬이 두려워했습니다.

박찬호 c.스포티비 뉴스

1997년 IMF 국제 외환위기 당시, LA다저스에서 활약했던 박찬호의 투구는 단순한 피칭이 아닌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그리고 용기를 주는 국민들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힘을 얻었고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박찬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우리 국민에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에게 박찬호가 그랬듯, 어쩌면 일본인들에겐 고시엔이 그런 역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국의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여 힘을 주는 것과 고교야구대회가 주는 힘은 다를 것입니다.

코로나에도 야구를 이어간 고시엔. c.야후재팬

하지만 평소 고시엔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고시엔은 평소 눈물을 감추는 일본인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역사를 담은 장소입니다.(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고시엔 이야기]의 첫 에피소드인 ’일본인들이 고시엔에 열광하는 이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패전 직후 흔들렸던 일본인들에게 고시엔은 속행되어 일본인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버블 경제가 붕괴되었을 때도,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아픔을 겪었을 때도 고시엔만큼은 굳건히 서있었습니다. 이렇듯 고시엔은 단순한 대회가 아니라 일본 국민들에게 힘을 주고 받쳐주는 ‘기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021년에 우승한 치벤 와카야마 c.스포니치

이러한 고시엔은 2021년, 약 2년 만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93회 센바츠를 시작으로 103회 고시엔도 약동함며 고시엔은 다시 약동했습니다. 다만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기에 이전과 같은 함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2020년 교류전 때와 마찬가지로 엔트리에 들어간 선수들과 감독, 기록원 등 벤치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들만 최소로 하여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학교와 고시엔의 스피커를 연결하여 브라스밴드의 응원을 보내거나 녹음본을 보내 경기 때 재생하는 등 고시엔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지, 고시엔에서 야구를 할 수 있음에 지금, 기쁨에 넘치고 있습니다.
괴로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여기에 고시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2년 대회 선수 선서


2022년 대회 선수 선서 c.카나로고

그리고 2022년, 코로나19가 조금은 사그라들었을 때, 관객들이 마스크를 끼고 고시엔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로 인해 이전과 같은 큰 함성은 낼 수 없었지만 브라스밴드의 연주와 관객들의 환호만큼은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괴로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고시엔에 그곳에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시엔에 있었기에 사람들은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c.동경신문
큰 함성이 돌아온 고시엔 구장,
고시엔에서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
돌아왔습니다!
-2023년 대회 개막전 중계

코로나가 거의 종식된 2023년 고시엔에 거대한 함성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고시엔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 고시엔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시엔을 찾았고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즐겁게 연주를 하는 등 지난 3년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본래의 고시엔을 즐겼습니다. 2023년 고시엔의 우승팀은 신시대의 야구소년들이라 불린 ‘게이오대학 부속고교’로 어쩌면 그들의 우승으로 원래대로 돌아온 고시엔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는 아직 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이 밝아온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완전히 해가 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길은 늘 열려있고 우리가 걸어 나가는 이 길이 분명 새로운 아침으로 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괴로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밝을 아침을 기대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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