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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고시엔에 불어온 선풍(旋風)

고시엔을 들썩인 시골 소년들

by 야구소년

2024년은 한신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해에 교토국제고가 우승하며 우리나라에서도 고시엔에 많은 관심이 생겼는데요. 그러나, "2015년에도 100회 대회라 하지 않았어요?", "분명 2018년도 100회 대회라 한 것 같은데"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헷갈릴만한 부분이기에 간략한 설명을 드리자면 먼저 2015년 대회의 경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전신인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가 시작된 지 100주년이 되는 대회였습니다. 사실상의 100번째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대회는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로 명칭이 변경된 이후 맞은 100번째 여름이 되는 대회였습니다. 전국고교야구연맹에서는 첫 번째 고시엔을 1918년으로 보기에 공식적인 100회 고시엔은 2018년이, 고교야구대회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100번째 해는 2015년이 되는 것입니다.

100주년이란 기념적인 해에, 야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더욱더 뜨거운, 진정한 여름으로 할 것을 맹세합니다.
-2018년 100회 대회 선수 선서

이러한 상징성을 갖는 2018년의 제100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작년의 교토국제고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욱 큰 기대를 모은 팀이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작년의 타이샤가 있기 전에 이 팀이 있었고, 2007년 사가키타의 기적 이후 최고의 드라마로도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길고 길었던 도호쿠의 비원을 마침내 풀어낼 것이란 믿음을 만들어냈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2018년, 100회 대회를 맞은 고시엔에 불어온 가나아시 선풍(金農旋風)! 도호쿠, 아키타, 그 도시 속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시골농업고, 그리고 100회 고시엔에서 등장한 일본의 고교야구를 상징했던 선수까지. 2018년의 여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나아시 농고

가나아시 농고 (c.아사히 신문)

가나아시 농고는 아키타 현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말 그대로 시골에 있는 농업고입니다. 아키타현 중심지에서 약 60km 정도 떨어져 있어 자동차로 이동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이러한 '촌'에도 야구의 꿈을 키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밭을 매는 법, 동식물 농사를 배우며 수업이 끝난 이후에는 그라운드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야구부가 있었습니다.


가나아시 농고는 아키타 현에서 그래도 약체로는 불리지 않는 학교였습니다. 2018년 전까지 센바츠와 여름고시엔을 포함해 총 8번 고시엔에 출전했을 정도로 나름의 강호로 불리는 팀이었고 1984년 전국대회에서는 4강에, 1995년 전국대회에서는 8강에 오르는 등 고시엔에서의 활약도 기대할 수 있는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2001년과 2007년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모두 1차전에서 패퇴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지역 예선 1차전에서부터 탈락하는 등 "몰락한 강호", "한물 간 학교" 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2017년, 가나아시 농고는 지역예선 결승에 올라 고시엔에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키타 현의 강호, 메이호에 5-1로 패하며 고시엔의 문턱에서 눈물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그 결승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5.2이닝 호투했지만 패전투수가 되며 눈물을 삼킨 2학년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시다 코세이였습니다.


요시다 코세이, 등장하다

요시다 코세이 (c.야후재팬)

2018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아키타현 예선, 가나아시 농고의 첫 경기의 선발은 요시다 코세이였습니다. 요시다는 첫 경기부터 9이닝 무실점 16k를 기록하며 팀을 다음 무대로 이끌었습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9이닝 3 실점 13k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완투승. 이어진 경기에서는 팀이 콜드로 승리하며 7이닝 무실점 3k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준결승전에서는 9이닝 4 실점 14k의 위력투로 완투승을 거두며 2017년 여름, 눈물을 삼켰던 결승으로 향했습니다.

결승전은 메이호와의 리벤지 매치가 되었습니다. 요시다는 메이호를 상대로 9이닝 무실점 11k라는 괴력투를 선보이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고시엔 행 티켓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의 예선 최종성적은 5경기에서 총 43이닝 7 실점 57 탈삼진. 믿기 힘든 성적을 기록하며 100회 고시엔으로 향했습니다.


고시엔을 들썩인 가나아시 선풍(金農旋風)

가나아시 농고의 11년 만의 고시엔. 첫 상대는 가고시마 실업고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요시다는 선발로 등판해 9이닝을 1 실점으로 막으며 완투했고 특히 6회 초 2사 2,3루의 위기에서 삼진을 잡아내는 등 총 14k를 잡아내며 가벼운 시작을 했습니다. 2회전에서는 오가키 니치다이(기후)를 만났습니다. 3대 3 동점으로 흘러가던 경기의 흐름을 바꾼 것은 8회 초, 5번 타자 오토모의 솔로홈런이었습니다. 이 홈런으로 기세를 탄 가나아시 농고는 6대 3으로 승리했고 요시다는 9이닝 3 실점 13 탈삼진을 잡아내며 고시엔에서 가장 주목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요시다 코세이 (c.news post seven)

3회전에서 가나아시 농고는 '헤이세이의 괴물' 마쓰자카의 모교인 요코하마(가나가와)를 만났습니다. 헤이세이 시대에 가장 강력했던 투수의 학교를 헤이세이의 마지막 해에 새로운 괴물이 나타나 상대한 것이었습니다. 첫회부터 실점하며 끌려간 가나아시 농고였지만 요시다가 3회 말, 요시다가 중앙 담장을 넘기는 동점 홈런을 때려냈고 8회 말, 6번 타자 1루수 타카하시가 역전 쓰리런을 쳐내며 최종스코어 5대 4로 접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날 요시다의 투구 수는 164구. 다음 경기에서 한계를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였습니다. 1,2,3회전을 연속해서 선발 등판해 도합 27이닝 475구. 정말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투런 스퀴즈 끝내기 승리 (c.마이니치 신문)

준준결승에서는 전통의 강호, 오미(시가)를 만났습니다. 4회에 선취점을 내주고 5회에 동점을 만들었지만 6회에 다시 점수를 주며 9회까지 점수는 2대 1로 오미의 리드였습니다. 9회 초 오미의 공격에서 투아웃 만루상황까지 몰렸지만 요시다는 가운데에 직구를 꽂아 넣으며 삼진을 잡아냈고 점수차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아시 농고에 찾아온 노아웃 만루의 기회, 무려 투런 스퀴즈로 역전에 성공하며 끝내기 승리했고 34년 만의 전국대회 4강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요시다의 투구수는 140 구였습니다.


요시다 코세이 (c. baseball gate)

오미라는 큰 산을 넘은 가나아시 농고는 다시 한번 산을 마주했습니다. 4강전의 상대는 와세다와 함께 서도쿄를 대표하는 니치다이산고였습니다. 직구 평균 구속이 130km대로 떨어진 요시다에 더해 가나아시 야수진들의 실수로 계속해서 위기가 만들어졌지만 그 위기 때마다 요시다는 팀을 구해내는 피칭을 하며 팀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다시 140km대의 공을 뿌리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요시다는 9이닝을 1 실점으로 막아내며 여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향하게 되었습니다. 134구 1 실점 7k. 이제 남은 것은 다음날 결승뿐이었습니다.


잘 싸웠다! 시골 소년들!

가나아시 농고 (c.마이니치 신문)

결승전의 상대는 2012년에 이어 봄-여름 연패를 노리는 고교야구 최강자, 오사카 토인이었습니다. 가나아시는 '잡초 군단', '헤이세이의 마지막 농민 봉기'등으로 불림과 동시에 100회 대회라는 상징적인 해에 도호쿠에 고시엔 우승기를 안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특히 전날 134구의 완투를 펼친 요시다가 과연 힘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주목했습니다.


결승전 패배 이후 가나아시 농고 (c. pr times)

그러나, 가나아시 선풍은, 요시다의 괴력투는 힘을 다했습니다. 결승전 전까지 도합 5경기 45이닝 749구를 던진 요시다는 힘이 빠져 그만의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 못했고 5이닝 12피안타(2피홈런) 12 실점으로 무너졌습니다. 그가 5회까지 던진 공은 무려 132구. 요시다는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패배가 확정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힘차게 공을 뿌리던 그의 모습은 왜 사람들이 고교야구를 보는지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가나아시 농고는 13대 2로 오사카 토인에 패하며 토인의 연패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100회 대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어느 팀도 아닌 가나아시 농고였습니다. 그들이 불어온 선풍이 다른 공립교에 희망으로 연결됐고 2024년 타이샤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요시다의 동생인 요시다 다이키는 직접 가나아시 농고를 다시 한번 고시엔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가나아시 농고 (c. 닛칸 스포츠)

2018년 여름, 시골 소년들의 야구는 고교야구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가장 뜨겁고 감동적인 여름이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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