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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Dec 08. 2021

말쟁이 엄마, 글쟁이가 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봐야 할 교과서라 불리는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었다.

선생님 저서가 참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었던 '우리 반 순덕이' 작가님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분 같은 멋진 은사님을 학창 시절 만났더라면, '나도 지금쯤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라는 상상을 해 보지만 나는 그냥 말쟁이다.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하는 것이 좋았다.

겪은 일들이 재미있거나, 슬프거나, 기쁠 때, 그 상황들을 늘 '썰'로 누군가에게 이야길 했다.

만나서도 하고, 전화로도 하고, 그렇게 정신없는 말쟁이로 살았다.

말을 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말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1-->5 정도를 만들어 오버하며 말을 하는 재주가 있다. (허풍과 과장, 그쯤이라고 해두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야기를 할 때  재미있게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만삭 때 교통체증 심한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빙판길에 대자로 뻗은 적이 있다.

그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흑역사를 이야기하기 바빴다.

보이스 피싱을 당할 뻔했던 정말 아찔했던 순간, 부끄러웠던 경험, 불행까지도 재미있게 말하고 싶은 이상한 욕심이 있다.

그런 나는, 개그맨이 TV 토크쇼에 나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MSG를 치는 이유를 백! 프!로! 공감한다.               


대학생 때 개그우먼 오디션을 추천하며 대학 동기가 응원해 주었는데, 한때 신동엽이 MC를 하고 허경환과 장도연이 일반인 때 패널로 출연한 프로를(그들의 데뷔 프로였다. 나도 그때.. 출연을. 했었.. 다..면??)

진짜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만큼 말을 잘할 자신은 있었는데, 내 경험(?)들이 그분들의 내공만큼은 안될 것 같아 포기했다. (주제가 톡킹 18 금인데, 나는 20살까지 모태 솔로였다.)      

그 방송사 다른 프로에 사연을 써 작가님이 섭외 연락이 온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친구와 내 민망한 흑역사를 생성할 것 같아 고심 끝에 포기했다.(이기면 상금도 있었는데)

단지, 그 유명한 프로에 나의 스토리가 통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나의 말쟁이 솜씨는 결혼 후 시댁에 김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남편은 친구를 만나러 가고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는 김장을 입으로 하고 있고, 아들 둘은 차분한 아빠를 닮았으면 좋았겠지만 시끄러운 날 닮아 온 집안을 날뛰기 시작했다.

시어머님께서는 많이 힘드셨는지 귀에 '이명'이 들리신다고 말씀하셨다.

"너희 집에 안 가니? 김장 다 한 것 같구나~ 다했어, 집에 안 갈래?" 라며 자꾸 재촉하셨는데

눈치 없던 나는 "00씨 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좀 더 놀다 갈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진심으로 아버님께 차 빼오라고 단호히 말씀하시며 우리를 친히 집에 데려다주셨다.

나는 이 사건을 또 '썰'로 만들어 주변 지인에게 종종 이야기했다.

'시댁에서 집으로 빨리 오는 비법'이라며.


20대의 내 말은 참 대담했다.

뒷담화 안 하고 앞에서 할 말하는 솔직하고 쿨한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난 흠 없는 사람인양 비판하고 조언이랍시고 시답잖은 충고로 잘난 척하며 살았던 시절이다.


30대는 그저 수다쟁이 아줌마였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동네 아줌마들과 뭐가 좋단다. 뭐는 별로란다. 집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차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그야말로 동네 아줌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하며 살았던 것 같다.

"너는 아프리카 오지 가서도 원주민들이랑 수다 떨고 잘 지낼 거야!"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와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택시기사님과는 말해 무엇하랴? 택시에 내리기 아쉬울 정도였으니...!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말들이 한없이 가볍고 돌이킬 수 없는 심지어, 영양가 없는 말들로 느껴졌다.

듣는 이를 피곤하게 나 또한 불 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의 무게감은 무거워야 하는데, 어째 나이가 들수록 내가 했던 말들이 후회가 되고 이불 킥 할 일들만 많아지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원초적인 이유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다.

말은 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고, 이젠 말을 하면 늘 후회가 되고...

책을 읽다 보니 누군가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고 내 말도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외로워서 주식이나 티브이영화, 게임, 술에 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지로 이사와 외롭게 지내던 어느 날,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글을 써보고 싶은데 어찌 쓰는지 몰랐다. 써본 적이 없어서 당연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방법과 이론을 배워보고 싶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글쓰기 수업시간이라 설레는 맘으로 수업에 참여했는데, 수업 날 작문을 해오라는 과제를 받고 정말 몇 백 년 만에 글을 써 봤다.

수업 시간에 글을 낭독했는데 강사님이 글이 재미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하지만, 글을 투고하거나 공모전에 낸다면 이렇게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조언과 함께.

그리고 두 번째 글쓰기 수업에는 나름 자신감이 생겼는지, 같이 글을 쓰는 수강생들과 함께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드는 과정까지 무사히 완주했다.

글쓰기 수업은 무! 조! 건! 작문이 따른다는 것을, 두 번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알았다.

글은 써야 는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써보는 수밖에...!


글쓰기를 하면서 내게 생긴 놀라운 변화는 똑같은 일상이지만 내 삶 속 사유가 깊어지고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글을 쓰며 막혀 있던 감정의 통로가 작은 물길을 만들어 큰 강물로 흐르게 되니, 더 이상 내 감정이 고여 병들지 않게 되는 치유의 힘이 생겼다.

또 글이 정말 좋은 점은 말은 뱉어버리고 주워 담을 수가 없지만, 글은 고쳐 쓰면 된다는 점이다.

활자로 글이 박혀 버리는 날이 온다면 문제가 되겠지 그런 날이 온다면 내가 쓴 글에 아주 거룩한 책임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이미 이루고 있는지도)

            



             

말하듯 글을 쓰고 싶다. 쓴 글처럼 살아가고 싶다.

적어도 내가 한 말과 글에는 책임을 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어 자유로운 글쓰기가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글쓰기가 책임감과 함께 성장해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말을 글로 쓰려니 길기만 하지, 결론은 간단하다.

나는 말을 하고 싶어 글을 쓴다.

말과 글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을 쓰고 싶다.

그래서 말하듯 글을 쓰고 싶다.






사진출처:  본문. 윗사진 둘 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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