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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원림을 찾아서

도갑사, 월출산, 반남면 고분군, 명옥헌, 환벽당, 식영정, 취가정

by 소중담

< 여행 열둘째 날 >


아침에 일어나 채비를 마친 후 도갑사로 향했다.

도갑사에는 주심포와 다포가 혼합된 보기 드문 양식의 목조건물 ‘해탈문’이 있었다.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도선수미비는 건립 기간이 무려 18년이나 되고, 한 명이 아닌 2명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탑비였다. 비문도 세 부분으로 따로 이루어져 있고, 글을 쓴 사람도 여럿, 새긴 사람도 여럿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웅장한 기품이 느껴진다.


도선수미비는 '도갑사 도선수미비'라는 이름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였다가, 보물로 승격되면서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되었다. 높이가 517cm에 달하는 석비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왕사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다.


통상 석비의 몸통을 바치는 귀부는 거북의 등껍질처럼 조각해 놓는데, 이 탑비는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석비의 몸통도 특이하게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비신의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용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조각해 놓았는데, 당대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석비가 1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석비는 도선과 수미선사 두 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비문은 앞쪽에 2개, 뒤쪽에 1개가 있어 모두 3개의 비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비문의 글을 지은 사람도 각자 다르다. 1636년 인조 14년에 건립이 시작되어 1653년 효종 4년에 준공된 이 석비는, 18년에 걸친 건립기간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석비의 차별성 때문에 도선 수미비는 귀중한 연구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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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g91N3z93SBLozmISX2Wa9YRtWmzEfac00nKhRwYmtK9ON79FQCN1klVEXGx-wyJHiBNUGTPNARjrv_fUlW_dso10_pr043HDLSwEIVgyRNp69BHLTXKi09wCbLUcM5HmsvcuL-f0hRBJFFmmW6upM 특이한 것은 다포를 포함한 여러 가지 건축 기법이 혼용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건축 양식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중요한 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다.


iVdjWZtNI7nOSpW-cqMJZp94YTveDjzGqyKDHlBy1iDQAM3VonSVi_P16oFKVSCfSytFjHLuupJNCb_ysU3uLSiEpf2E0O_BY_XuAFDxFxbLsm-yyTj8x5B92JujlnAud6ltR93okcMHckZiBuhYdoI 도선 수미비는 규모나 조각술에 있어 당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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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이 하도 아름답다기에 마애석불과 삼층석탑도 볼 겸 올라갔다. 하지만 오르다 보니, 아침도 못 먹은 데다 제때 점심을 못 먹을 것만 같아, 갈대밭까지만 가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봤더니 올라간 코스가 가장 어려운 코스였다. 시간만 있었으면 다 볼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영암으로 올라오다 보니, 숨 막힐 듯이 아름다운 월출산의 모습에 탄성이 쏟아졌다. 괜히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며 호남의 소금강이 아닌 것이다.






반남면 고분군을 본 후, 나주 국립 박물관을 찾았으나 휴관이었다. 아, 월요일. 광주 국립박물관도 못 간다.


담양으로 넘어가 명옥헌부터 찾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온통 배롱나무로 둘러싸인 연못과 정자가 자연 속에 숨어, 보일락 말락 숨바꼭질하는 듯하였다. 자연을 차경한 원림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배롱나무숲에서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봤을 때는, 또 다른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다. 무성한 나뭇가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배롱나무 가지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과 어우러져, 아롱아롱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이 여간 황홀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원림이 만들어내는 멋에 취해, 여기저기에 오밀조밀 모여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정자에 앉고, 눕고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 정자를 본연의 모습으로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이 있기에 명옥헌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도 오묘하지만, 때론 사람들의 존재가 더욱 오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도 이름난 정자인데, 지금은 명옥헌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것 같다. 그나저나 러시아 여행객을 또 만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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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2OOBGefdIh7WHVpQOQQDyDtS21UBPTivtdzz9_voRdq9ddCXdZbnVAo2nnGR9Og76Ylaw0fB2kHxLsiI4Mj07B1bokgq6I-vnkMG0bOiWmhQZkigyLHYsqEoQzBn93YNinReiVUt4b9vZuCMv6nQ 문화재청의 설명에 따르면, 환벽당 주변으로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물이 흐르고, 계곡 아래 증암천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어 자미탄((紫薇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ZoI8IEx9c4zVebHlOORv0iaHeoBJsD5sPcLcv2Eazu_giI40FC69V3FKYTlaEscNo95Mazi5VVAWN0NxWb933GyuoRVy6R_v150pdbCrrn_bfoRmFuBSafQfeQelwereStYUwAo1gBD7eMYSYPxbqco 식영정 입구. 식영정은 1560년 김성원이 지었는데, 이곳에서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시와 가사를 지어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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