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읍성, 선암사, 태안사
7월의 마지막 날.
친구와 여행한 날까지 더하면 날수로만 19일째 집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전날 축축한 텐트에서 잠을 잔 데다, 지갑을 잃어버린 통에 불안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지, 몸이 찌뿌듯하다.
다섯 시에 일어나자마자 온천부터 찾았다. 잊지 못할 번호 ‘210’ 번.
다행히 전날 사물함의 번호가 생각이 나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캐비닛 안에 지갑이 고이 놓여있었다. 그 안도감과 기쁨이란. 지갑을 잃어버리니 사람들이 그렇게 돈에 연연하는 이유가 몸으로 깨달아졌다.
지갑에는 달랑 카드 한 장이 들어있지만(당시에는 스마트폰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카드가 내겐 모든 것이었다. 먹는 것부터 잠자는 것, 관람료, 이동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것 하나에 달려 있다. 말하자면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지속하는 데도 필요한 힘을 제공해 주는 막강한 권력 또한 ‘돈’이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자체로만 놓고 보면 가치중립적인 것이지만,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은 평생 경계하면서 지혜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사를 바라보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떤 미련한 사람이 인생에서 돈만이 전부라고 말할까.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낙안 온천에는 선운산에 오르며 계곡에서 보았던 ‘검은 물’과 같은 타닌 성분이 함유된 녹차탕이 있었다. 색깔만 봐도 좋은 물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피부를 미끈거리고 유연하게 해 준다. 옆에는 유황 온천탕도 있다. 유황 성분은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날 사장님의 호의와 친절이 온천을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낙안 읍성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선암사로 향했다.
선암사를 다 둘러볼 때쯤, 문화해설사를 동반한 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마비’ 앞에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길래 들어봤더니, 대웅전 현판에 쓰인 김조순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였다. 들으면서 ‘역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어야 제대로 관람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워낙 일정이 빡빡하고, 정확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그렇게 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선암사 대웅전 현판에는 세도정치의 대부 김조순의 이름이 적혀 있다. ‘대웅전’ 글씨에 비하면 작지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글씨도 아니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선명하게 이름이 적혀있는 걸 볼 수 있다.
사연인즉슨, 정조가 죽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선암사가 김조순의 힘을 등에 업어 핍박을 면하려 했던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역시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다. 할 수만 있으면 문화해설사를 꼭 동반해서 관람하는 것이 상수다.
선암사 대웅전과 석탑.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에서 선암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부석사는 자리 앉음새가 뛰어나고, 선암사는 건물과 건물 간의 공간 운영이 탁월하며, 불국사는 돌 축대의 기교와 가람배치가 압권이다.”
점심은 태안사 앞 식당에서 다슬기 돌솥밥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 가장 가격이 비싸다. 그러나 옆에는 시원한 계곡이 흐르고 비싼 만큼 맛이 있었다. 태안사를 다 돌고 내려오니 몸이 녹초가 됐다. 빨리 쉬고 싶은 생각에 바로 구례로 이동하여 찜질방부터 찾았다. 다행히 24시간 찜질방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격은 15,000원. 더 이상 검색하고 찾아갈 힘이 없어 그냥 머물기로 했다. 건물 뒤편으로 테라스가 있고, 옆으로는 시원하게 강물이 흘러간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하루의 고단함이 강물과 함께 씻겨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