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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23. 2024

내 생각에 딴죽을 거시오!

몽테뉴 <에쎄>

매일 새벽에 독서 멤버들이 모여서 읽은 책을 나눕니다.

'자, 여섯 십니다. 오늘은 누가 읽은 책 나누어 주실까요?'

........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독서를 이끌어가시는 분이 강의로 그 시간을 채우곤 합니다.


보통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새벽 5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6시부터 7시까지 읽은 책 내용을 나눕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부터 새벽잠이 많기도 하고, 밤늦게 잠이 드는 생활이 습관이 되어왔기 때문에, 6시 토론 모임에만 참여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낮과 밤 시간에 읽은 책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가, 새벽 토론 시간 때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토론 모임을 계속하다 보니, 다들 읽은 책을 나누는 것에 대해 다소 어려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책을 읽느라 내용이 이해 안 될 수도 있고, 딱히 말할 것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말을 횡설수설하면 어떻게 하지? 말한 내용이 부실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말한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까? 등등. 이런 부담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같은 세미나를 다니는 분들 중에 몇몇의 뜻이 맞아 3년 정도 교수님들과 실력 있는 강사들을 초청해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반년씩 6개 분야에 걸쳐 강의를 듣고 공부를 했는데,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그리고 다음날 오후까지 이어지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질문할 시간이 주어져도 질문이 별로 없었고, 질문도 단순한 차원에 머물 뿐,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한국의 교육 환경 탓으로만 돌려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아이들을 교육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교육 방법으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궁금한 것을 서슴지 않고 묻거나, 생각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라, 개인이 의식을 가지고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토론 시간에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비교적 자유롭게 말하는 편입니다. 비록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논리가 체계적으로 잡혀 있지 않더라도, 말에 두서가 없다 할지라도 읽고 생각한 것을 나눕니다. 그렇지만 말하기 전에 타인에게 내 생각이 잘 전달되도록,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 정도는 하고 말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누군가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미처 내가 알지 못하거나 혹시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 가진 지식과 지혜를 나누다 보면 보다 나은 앎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몽테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누가 내 가면을 벗겨 진실을 폭로했으면 한다. 그것은 명석한 판단력과 오로지 그 의견의 힘과 미의 식별에 의해서 그리하라는 말이다(주 1).


몽테뉴는 어느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에 대해, 사물에 대해 직접 실험하고 연구하여 깊이 이해하고 진리에 이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앎을 위해 진지하게 나누어보자고 합니다.

그러니 명석한 판단력으로, 힘 있는 의견으로, 미를 식별하는 날카로움으로 내 생각에 딴죽을 걸어보라고 합니다.


사실 자기의 무식을 인정하는 일은 판단력을 가졌다는 가장 아름답고도 확실한 증거라고 나는 본다. (중략) 나는 모든 사물에 관해서 자유로이 내 의견을 말한다. 사실 내 권한에 넘치는 일과, 결코 내 권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물에 관해서도 말한다. 내가 이렇게 의견을 토로하는 것은 사물의 척도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역시 내 판단력의 한계를 밝히려는 것이다(주 2).


내 판단력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현상)에 대한 진리를 밝히는 척도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사물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진리에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놓을 테니, 당신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진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 아닐까요?

대화와 토론은 이러한 진리에 대한 진지한 마음가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바꾸면 됩니다.




주 1, 2)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화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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